시리아 고대유적 ‘팔미라’ 총책임자 칼리드 알아사드
▲ IS 점령 직전 유물들 옮겨
“숨긴 곳 말하라” 협박에도
끝까지 함구하다 결국 참수
평생 함께한 기둥에 매달려
유네스코도 깊은 애도 표명
사막을 건너던 고대의 교역상들이 쉬어가던 오아시스 도시, 요르단 페트라와 더불어 중동의 가장 오래되고 큰 고대 유적인 시리아 팔미라의 유물 발굴사에서 칼리드 알아사드(83)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팔미라에서 나고 자란 아사드는 40년간 팔미라 유적 총책임자로 일하며 중요한 유물 발굴에 기여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쇼니주립대의 중동전문가 아므르 알아즘은 가디언에 “하워드 카터 없이 이집트 고고학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아사드 없이는 팔미라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스터 팔미라’ ‘팔미라의 지킴이’라고 불렸던 아사드가 팔미라를 점령한 이슬람국가(IS)의 손에 끝내 살해당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와 시리아 관영 사나통신 등은 IS가 지난 18일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아사드를 공개처형했다고 밝혔다. IS는 아사드에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충성했고, 정부 고위 당국자 및 보안당국과 연락하며 ‘우상’을 돌봤다는 죄를 씌웠다.
아사드는 반평생을 바친 박물관 앞 광장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 안경을 쓴 채 참수당했다. 시신은 팔미라 한복판 유적 기둥에 매달렸다. IS 지지자들은 그 처참한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팔미라 태생인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공부했던 몇 년을 빼고 평생을 고향에서 보냈다. 1963년 팔미라 박물관장 겸 문화재국장으로 임명됐고, 40년간 자리를 지키다 2003년에야 은퇴했다. 이후 아사드의 자리는 그의 아들 왈리드가 물려받았다. 그는 딸에게 팔미라의 전설적인 고대 여왕 제노비아의 이름을 붙여줬을 정도로 고향 역사와 유적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아사드의 조카 칼리드 알홈시는 아사드가 “이 도시와 유적들에 너무도 깊이 밀착해 있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고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독학으로 고향에 대해 공부했지만 그의 지식은 상당히 깊었다. 외국 연구자들은 아사드를 통하지 않고는 팔미라에서 어떤 연구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알아즘은 “아사드는 팔미라의 모든 구석구석과 갈라진 틈 하나까지 알고 있었다. 그냥 책을 사서 공부한다고 해서 알 수 없는 지식들을, 아사드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지식들을 영영 잃어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5월 IS가 팔미라를 점령하기 직전 아사드는 아들과 함께 박물관에 있던 유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총지휘했다. IS는 팔미라 입성 직후 아사드를 체포했다가 며칠 만에 풀어줬다.
서부 도시 홈스에 사는 아사드의 아들 모하메드는 “아버지는 도시를 떠나길 거부했다”고 회상했다. IS가 죄없는 노인까지 해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S는 곧 그를 다시 잡아갔다. IS는 아사드를 한 달 넘게 구금한 채 돈이 될 만한 숨겨진 유물을 내놓으라고 심문했지만, 아사드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19일 성명을 내고 “팔미라에 인생을 바친 아사드로 인해 우리는 고대 세계의 교차로였던 이 위대한 도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슬람 이전 유물을 이교도의 것이라고 여기는 IS는 지난 6월 팔미라에 있는 영묘 두 곳을 파괴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IS가 팔미라 유적을 미군 공습을 피할 ‘방어막’으로 이용하기 위해 파괴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