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100년 전 ‘아Q’가 중국에 조언하는 ‘정신승리법’

서영찬 기자

▲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왕후이 지음·김영문 옮김 | 너머북스 | 264쪽 | 1만6000원

[책과 삶]100년 전 ‘아Q’가 중국에 조언하는 ‘정신승리법’

중국 신좌파 대표주자 왕후이는 2013년 출간한 <아Q 생명의 여섯 순간>에서 여전히 루쉰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Q정전>은 중국적 전통에 대한 풍자이며 반봉건, 혁명, 저항을 역설하는 소설로 평가된다. 왕후이의 견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아Q정전>을 꼼꼼히 읽어주면서 이런 주제의식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다. 그가 <아Q정전>에서 주목하는 것은 루쉰 특유의 ‘절망을 이기는 법’이다. 그는 이를 ‘정신승리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도덕혁명과 생명주의로 집약된다. 도덕혁명이란 육체를 초월하는 정신적 자각이고, 생명주의는 루쉰식 저항의식이다. 루쉰은 한 개인이 진정으로 생존하려면 “용감하게 싸우면서 이 저주스러운 곳에서 저주스러운 시대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루쉰은 ‘노예보다 주인이 된 노예’를 더 비극적인 상황으로 봤다. 노예가 주인 위치에 올라서더라도 노예근성 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불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왕후이보다 한 세대 앞선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 문학의 저항성을 발굴한 선구자인데, 그는 제국주의 일본이 ‘주인이 된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문명개화의 결과가 이웃 나라 침략으로 이어진 것은 노예근성을 떨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도덕혁명이 결여된 탓이다.

노예근성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Q정전>이 던진 이 화두 앞에서 다케우치는 ‘자기부정’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다케우치는 자기 내부로부터 발한 부정이 진정한 부정이며, 자기부정이 없는 상태에서 얻는 지식과 사상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부정은 진정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필수 코스로써 왕후이의 정신승리법에 조응하는 개념이다.

<아Q정전>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 가까이 흘렀다. 왕후이에 따르면 100년 전 중국은 동아병부(東亞病夫)라 불리는 약골이었던지라 서구의 약방에서 보약을 지어먹어야 성인으로 자랄 가망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자유, 민주를 수용하고 경제 발전과정을 거치며 노예의 길을 걸어갔다. 그 결과 “떨쳐 일어난 신체는 튼실해졌지만 아직도 머리를 가누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수년 전 노동착취로 악명 높은 팍스콘 중국 공장에서 노동자 13명이 차례대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왕후이는 이들에게서 아Q가 살아 있음을 목도했다.

루쉰은 <아Q정전>이 시체로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효용이 사라진 시대를 희망했다. 악당이 사라진 고담시에서 배트맨이 필요할 까닭은 없는 법.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아Q는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중국 온라인상에서 아Q의 부활을 주장하고 자오 영감, 자오치 나리, 왕털보 등 소설 속 인물을 불러내는 글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정신승리법과 자기부정을 거치지 않은 G2 국가 중국의 실상이란 100년 전 동아병부 상태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것이 왕후이의 진단이다.

아베 담화를 둘러싸고 한·중·일 삼국이 시끌시끌했다. 한·중·일은 과연 역사 문제에서 100년 전보다 진전했을까. 동아시아는 진정으로 근대를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우뚝 섰을까. 그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중·일 세 나라에 아직도 아Q가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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