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 윤충로 지음 |푸른역사 | 402쪽 | 2만5000원
가난이 싫어 베트남전쟁에 자원한 어떤 군인은 “베트남보다 한국이 지옥”이라고 믿으며 전쟁을 충실히 수행했다. 모범 파월 군인이었던 그는 귀국 후에도 베트남 향수를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참전 군인단체를 결성하고, 군복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며 옛 전우들과 어울리며 자주 술을 마셨다. 자연스레 가족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결국 이혼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베트남으로 달려갔다. “여기 와 가지고 그 당시에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꿈, 꿈, 꿈속을 헤매는 그런 기분으로 만날 살았어요.” 그는 베트남에서 재혼했고, 전쟁터를 찾아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고 전쟁 관련 물품을 모으는 취미를 즐기며 산다.
베트남전쟁은 1975년 끝났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종전했을망정 개인 차원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은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되는데 저자는 이런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은 ‘오래된 현재’다. 이런 주장은 참전 장병 25명의 육성을 통해 뒷받침된다.
책은 생생한 구술 자료를 토대로 국가 차원이 아닌 시민 차원에서 베트남전쟁을 재조명한다.
베트남전쟁의 성격은 흔히 반공주의와 근대화로 압축된다. 하지만 전장을 몸소 체험한 군인 낱낱의 전쟁 기억은 그것과 사뭇 다르다.
국가는 평화의 십자군이니 반공의 첨병이니 하는 수사로 파월 장병을 규정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병 대다수는 마지못해 끌려가거나 찢어지는 가난을 벗어날 차선책으로 파월을 선택했다. 또 “한국에서 가혹한 군생활을 하느니 차라리…”라는 심정으로 자원하거나 사나이다움을 좇아 전장으로 간 경우도 있다. 이들의 베트남전쟁은 반공주의니 애국주의니 하는 거대담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돈 준다니까 갔고, 가야 할 형편이니까 갔을 뿐이지,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찾아준다고 간 사람은 아니거든.” 한 군인의 말은 파월 장병의 심리를 포괄한다. 초창기 파월은 강제적이었는데 적잖은 장병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탈영했다. 그리고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거기에 반공, 민주, 애국 따위의 이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베트남전쟁사에서 외면당한 미시적 사건들의 발굴이다. 특히 ‘한진’이라는 기업이 치른 베트남전쟁은 역사에서 별로 다뤄지지 않았다. 한진은 베트남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물자 운송을 주로 맡았는데, 화물차 3~4대로 출발해 월남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급성장했다. 한국인 파월 기술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또 정치적 기민함으로 전장에서 대박을 터트린 한진은 많은 대기업의 성장사를 압축적으로 은유한다.
국가는 근대화 구호를 요란하게 외쳐댔지만 후방의 시민은 텔레비전, 미제 RCA 라디오, 미군 야전식량 ‘시레이션’ 등을 통해 이를 체감했다. 보릿고개가 흔한 시절 시민 차원에서 파월은 돈 되는 일로 인식됐고, 가난의 돌파구로 비쳤다. 이에 편승한 국가는 경제발전이라는 논리로 전쟁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신화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병사들의 핏값으로 치른 전쟁이 한국 사회를 근대화하기는커녕 개인 및 지역사회에 큰 후유증을 안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베트남전쟁 종전 40여년이 지났지만 그 후유증이 과연 치유됐는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