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중국 ‘전승절 외교’는 한국 외교에서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미·중의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로 미국 측에 좀 더 기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오던 외교에서 한 클릭을 옮겨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외교 행보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3일 중국의 ‘군사굴기’(軍事堀起·군사적으로 우뚝 일어섬)를 상징하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은 그래서 박 대통령에겐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불가피한 미·중 균형·실리 외교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균형·실리 외교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우선 북한 변수가 상존하는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여전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제 2일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선 북핵 문제, 10월10일 당 창건일 즈음한 장거리 로켓 발사 등 북한의 도발 억제를 위한 중국 역할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주요국 정상 중 홀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에게 북핵과 관련한 ‘선물’을 줄 수도 있는데, 특히 정상회담에서 메시지가 나온다면 교착국면인 북핵 문제의 새로운 모멘텀이 조성될 수 있다.
또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 회담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정상회담에 시큰둥했던 시 주석이 긍정적으로 답한다면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일 정상회담 등 일본과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시 주석이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만큼 북핵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질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된다.
■ 남북의 역전된 위상 확인되나
한·중관계와 북·중관계 역전도 확인될 수 있다. 중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국가행사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불참하고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모양새 자체가 보여주는 상징성이 상당하다. 박 대통령이 방중 첫날 시 주석에 이어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중국 권력서열 1·2위를 연쇄적으로 만나면서 한·중관계가 격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열병식에서도 이런 사정이 드러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톈안먼 망루의 중앙, 시 주석의 왼편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북 김일성 주석이 1954년 10월1일 건국 5주년 기념식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나란히 섰던 자리다. 반면 김 제1비서를 대신해 참석하는 북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뒷줄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남다른 인연
서로를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르는 두 정상의 인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2005년 7월 저장성(浙江省) 당 서기던 시 주석의 한국 방문 때 처음 만났다. 당시 시 주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만남은 2시간 넘게 이어졌고, 이후 10년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인연은 양국 현안해결에도 작용했다. 2013년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 우리 정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선포로 대응했을 때 중국이 조용히 넘어간 것이 단적인 사례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이전 정권이었다면 중국이 결코 모른 척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