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산은 다섯 살 때부터다. 두 고개를 넘는 성묘길은 매번 사촌 형들이 등을 받쳐줘도 힘들었다. 키가 삽자루 높이도 안될 때였다. 풀숲에서 뱀 나올까 맘 졸이고 밤 줍는 재미가 쏠쏠했던 마을 뒷산이었다.
친구들과 폭우 속에 올라본 덕유산, 수학여행 길에 밤새우고 졸면서 걸은 설악산, 하행 길을 잘못 들어 어둠과 눈 속에서 헤맨 대둔산, 천왕봉을 포기할 수 없어 장터목에서 칼잠을 잤던 지리산, 5일간 텐트 치고 살았던 월악산, 딸아이 손을 잡고 처음 올랐던 수락산, 그리고 두 해 겨울을 무박2일의 행군으로 빠져 나왔던 양평의 어느 험한 산….
산 타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중간치는 될까. 유달리 산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르막길 잘 오르는 종아리 뒷근육도 없는 내가 ‘인생 속 산’에 주절주절 사연을 걸다보니 수렴되는 것도 있다. 산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이 평균치에 가까울 듯하다. 이런 생각에 다시 글의 줄기를 잡게 된다.
산이 시끄럽다. 설악산 오색약수터 위에서 끝청봉 아래 해발 1480m까지 3.5㎞의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8월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의결한 뒤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생태 국치일’로 부르는 날이다. “왜놈 말뚝보다 더 끔찍할 것”이라는 도올 김용옥의 일갈처럼, 올 것이 온 것일까. 설악산에 5중으로 쳐 있던 녹색보호막(국립공원·천연보호구역·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백두대간보호구역)이 걷힌 날부터 여기저기 “우리도 놔달라”고 지자체들이 들썩이고 있다. 녹색의 큰 줄기, 백두대간에 경보가 울린 것이다.
한마디였다.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달부터 기획재정부·환경부·국토교통부·행정자치부·문화체육관광부는 양양군도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비공개로 가동했다. 국정감사 목전에 야당에 꼬리가 잡힌 5차례 TF 회의록엔 환경부가 컨설팅을 주관하고, 문화재청이 지원하고, 범정부적으로 도운 얘기들이 기록돼 있다. “잘 설계해 문제없이 추진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이란 표현은 압권이다. 채점자들이 처음부터 답지를 같이 쓰고 고쳐준 격이다. 두 차례 퇴짜 맞은 설악산 케이블카의 경제성 평가는 다시 ‘흑자’로 바뀌었다. 올해 4월 제출된 양양군의 세번째 사업신청서는 그렇게 4개월 만에, 공무원이 과반을 점한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표결로 통과됐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정부 사업’이고, 대통령이 전·후반의 운명을 갈랐다고 단순화해도 무방할 듯하다.
‘부활’한 오색 케이블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고. 전경련은 4성급 호텔과 레스토랑, 레저시설을 세운 설악산 정상 조감도를 내놓았다. 뜬구름 잡기가 아니다. 문화부의 ‘산지관광 활성화’ 연구보고서엔 다 해보자고 담겨 있는 그림이다. 지난 4일 문화부가 입법예고한 ‘산악관광진흥법’은 몇 걸음 더 나간다. 보전산지든, 백두대간이든 산악관광진흥구역으로 고시되면 개발을 허용하고, 27개 법령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민간사업자가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놨다. 8년 전 지리산을 내려다보며 “여기는 아직 개발이 덜 되었다”고 아쉬워한 ‘MB의 갈증’을 풀어줄 법이다. 산을 돈으로 보고, 규제덩어리로 보는 ‘난개발의 폭주’는 결국 미래를 덮치게 돼 있다. 2008년의 4대강은 이렇게 2015년의 백두대간으로 향하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환경부는 정 위치에 서 있지 않다.
해남의 두륜산, 통영의 미륵산에도 올라 봤다. 케이블카에 올라 낙조와 한산도를 봤지만, 잠시 ‘찍고 온’ 두 산에 대한 기억은 없다. 기우일까. 국립공원에 21년 만에 케이블카 빗장이 열리면서 앞서가는 조바심이 있다. 내 인생과 생각에 자리한 산과 ‘아이들의 산’이 다르지 않길 기도하게 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산 정상까지 5분 만에 달려가는 케이블카 속에서는 제 맛을 느낄 수 없는 시구다. 북퀘벡 크리족 인디언 추장이 던진 경구도 얹는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내년 3월이면 끝청봉엔 6개의 지주가 박히고 로프가 걸리기 시작한다. 바위산에 분비물을 묻히고 유달리 생활 반경을 좁혀 사는 산양들은 떠나야 한다. 설악산에 200마리쯤 남아 있다는 희귀종 산양이 쫓겨가며 번식 의욕을 찾을 수 있을까. 지리산·월출산·속리산·소백산·팔공산·마이산…. 케이블카를 얹으려 시끄러운 산들이다. 그 맨 앞에 설악산이 있다. 님아, 저 산을 건들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