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매우 번성했던 ‘벌의 왕국’이 있었다. 지배층은 막대한 빚을 지고도 호화로운 궁전을 짓고 값비싼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산해진미로 파티를 열었다. 강력한 군대를 이용해 이웃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다.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장군들은 후방에 숨어있다가 승전의 공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재판도 뇌물에 의해 좌우됐다. 그러다 어느 성직자가 홀연히 나타나 회개를 외치고 도덕의 왕국을 세웠다. 궁전과 호화로운 옷을 팔아 빚을 갚았고, 군대 해산은 물론 극장도 폐쇄했다. 정직한 삶이 새로 시작되면서 판사도 필요 없게 됐다. 그러자 군대도, 재봉사도, 요리사, 목수, 조각가, 재판관도 일을 잃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 군대가 쳐들어오자 이들은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버나드 맨더빌은 1723년 출간된 <꿀벌의 우화>에서 절제와 겸양, 정직과 근면보다는 사치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미덕이라고 칭송했다.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그 바퀴였다.” 그는 악덕의 숭배자로 낙인찍혔다. 그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저축의 역설’을 제시하기 200년도 더 이른 시기에 유효수요를 갈파했다.
몇 달 전 유수기업의 임원을 만났다. 탄탄한 대기업으로 보수도 높은 곳이었다.
“임원되시니 생활은 나아지셨지요?”
“뭘요. 부담이 더 커졌습니다.”
“넉넉한 노후가 보장되잖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아요. 임시직으로 언제 잘릴 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아끼고 저축해야 합니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못 쓰고, 있는 사람은 없어질까봐 두려워 소비를 못한다. 지갑이 찢어질 정도로 돈을 가지고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돈을 쓸 분위기가 아니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다’ ‘조만간 부동산이 폭락한다’는 등등 어두운 말만 떠돈다. ‘구조조정’ ‘청년실업’ ‘반퇴시대’는 이미 익숙해진 단어가 됐다. 사람의 수명은 늘어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반갑지만은 않다. 더 오래 살게 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보험사가 쏟아내는 각종 미래 대책 보고서는 암울한 ‘묵시록’과 같다. 보고서는 은퇴 후 필요자금을 뻥튀기해 개미들을 겁박한다.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는 월 7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10억원의 목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한 돈이 노후에 필요하다고 하니 가슴이 갑갑할 뿐이다.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근로자 1618만명의 중위소득은 2276만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89만원이다. 현실적으로 은퇴 전 소득이 200만원도 안되는데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이 노후에 필요하다고 한다. 하늘과 같은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고서에 겁먹은 민초들이야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는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는 2000년대 이후 60대 이상의 평균소비성향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2000~2005년만 해도 81%에 달했던 60대 이상의 평균소비성향은 2011~2014년 71.1%로 급락했다. 반면 65세 이상 저축성향은 지난해 40.5%로 일본(24.1%), 미국(4.3%)을 크게 앞선다. 고령층의 소비성향이 크게 하락하면서 가계의 전반적인 소비성향 퇴조를 주도하는 형국이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는 것은 집단에 독약일 수 있다. 소비수요의 감소는 기업에 노동자 해고의 빌미를 주게 된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수입이 감소해 상품의 수요는 줄어들고 경기는 나빠진다. 개인의 저축은 개인을 부유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을 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나친 저축은 경제전체의 부를 감소시킨다. 이른바 저축의 역설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장기불황 때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돈을 쥐는 즉시 은행으로 달려갔다. 일본 정부가 수요진작을 위해 현찰을 쥐여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나. 중세 사람들이 지옥불로 떨어지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면죄부를 사서 천당행을 예약했듯이, 현대인들은 곳간에 금은보화를 쌓거나 각종 보장내용으로 빼곡히 채워진 보험증권을 행복티켓으로 구입하고 있다. 맨더빌의 ‘사치가 나라를 살린다’는 구호는 도발적이지만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