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몹시 화가 난 듯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았다.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단문으로 이뤄진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심 대표는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당시 장면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1분51초짜리 동영상은 조회수 180만을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심 대표가 토해낸 사자후(獅子吼)” “속이 다 후련해지는 사이다 발언” “심 대표의 ‘포스’ 작렬”이라며 격하게 호응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계십니까? ‘짝퉁’ 임금피크제, 이게 임금상한제인데 왜 이 사회에서 고액 연봉받는 사람들은 임금상한제에 포함 안 시켜요? 장관은 왜 1억2000만원씩 다 가지고 가요? 국회의원은 왜 1억4000만원을 다 받아야 되고? 5000만~6000만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 3000만원짜리 청년 연봉 만들어 내라고 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임금 다 받아갑니까. 왜? 양심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불편한 진실’이 까발려지자 움찔했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터이다. “양심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말에 대꾸할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심 대표의 격한 발언에는 ‘고통분담’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들이대며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도 들어 있었다. 그는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어요. 살찐 고양이들 살 드러내는 거 그게 고통분담입니다. 졸라맬 허리띠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고통분담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가 언급한 ‘살찐 고양이법’은 2013년 3월 스위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한 법안이다. 주주가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규제하고, 인수·합병이 성사됐거나 임원이 퇴직할 때 지급하는 특별보너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찐 고양이(fat cat)’는 배부른 자본가를 빗대 쓰는 말이다.
국민투표 청원운동을 벌여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은 치약회사 ‘트라이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국회의원인 토마스 마인더이다. 그는 2001년 자금난에 시달리던 항공사 스위스에어가 물품 공급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몰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회사를 되살린 마인더는 스위스에어 경영진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것에 분노해 2008년부터 5년간 국민투표 청원운동을 벌여 ‘살찐 고양이법’을 통과시켰다.
스위스와 달리 ‘살찐 고양이’들에겐 살 맛 나는 세상을 열어주고, 노동자들에겐 포기와 좌절, 절망을 안겨주는 ‘고통 전가’ 정책만 내놓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던지 심 대표는 “졸라맬 허리띠가 없어요. 200만원도 못 받는 940만 노동자들, 허리띠 졸라매는 게 아니라 목 조르는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결단만 하면 시행할 수 있는 청년 고용대책도 제시했다. 심 대표는 “청년고용할당제 5%만 해도 23만개 일자리 만들 수 있어요. 대기업 사내유보금 1%만 조세로 거둬도 6조원입니다. 왜 못합니까? 왜 안합니까?”라고 따졌다.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며 ‘호모 비정규니언스’가 돼 핍진한 삶을 이어가는 청년들에게 정규직은 ‘넘사벽’이 되고 있다. 심 대표의 지적대로 청년고용할당제를 현행 3%에서 5%로 늘리고, 적용대상을 공공기관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하면 청년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의 1%를 청년고용세로 물리고, 고액연봉자에 대한 최고임금제 신설도 논의해볼 만하다.
심 대표가 국정감사에서 격한 발언을 쏟아낸 뒤 ‘9·13 노사정 합의’(일각에선 ‘9·13 노사정 야합’ 또는 ‘9·13 노동재앙’으로 부르기도 한다)가 이뤄졌다. 심 대표는 노사정 합의문을 접하고 허망했을 듯하다. 그가 제시한 고용대책과는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적했듯이 노사정 합의문은 “‘임금피크제 도입, 쉬운 해고, 비정규직 확대, 근로시간 연장’을 쓸어 담은 재앙 모음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 합의문대로라면 나이든 아버지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다 ‘쉬운 해고’를 당해 직장에서 내쫓기고, 자녀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이다. 노동력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본가는 이윤을 챙기고,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심 대표가 바라는 ‘양심이 살아있는 사회’나 마르크스가 원한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웃는 사회’는 ‘이상(理想)’에 불과하다. 양심 없는 ‘살찐 고양이’들이 넘쳐나고, 노동자들은 졸라맬 허리띠가 없어 목이 졸리는, 그게 한국사회의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