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병사들
죄예 나이첼, 하랄트 벨처 지음·김태희 옮김 | 민음사 | 578쪽 | 3만2000원
“폭탄 열여섯 발 중 여덟 발이 도시 안으로 떨어졌어요. 집들 가운데로요. 셋째 날에는 아무러면 어떠냐는 심정이 되었고, 넷째 날에는 즐거워졌어요. 아침의 식전 오락 같은 거였지요. 들판에서 달아나는 군인들을 기관총으로 몰아가고 총알 몇 발로 뻗게 만드는 일이 말이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조종사가 자신의 출격 경험담을 동료에게 토로한 내용이다.
![[책과 삶]평범한 독일인들의 무차별 살상… 왜 그들은 집단광기에 빠졌을까](https://img.khan.co.kr/news/2015/10/16/l_2015101701002088500205831.jpg)
그는 무차별적인 살인 행위를 오락에 비유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전투를 1인용 슈팅 게임처럼 표현한다. 무용담은 계속 이어지는데 죄책감이나 적군에 대한 동정은 찾아볼 수 없다. 민간인 사살 장면을 묘사할 때도 즐거웠다거나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책에는 이 같은 나치 육해군 병사들의 육성이 가득하다. 2차 대전 때 미국과 영국은 수용소의 독일군 포로를 도청했다. 포로들은 서로 전쟁 체험담을 주고받았는데 대화는 거침없고 참전 군인의 속내가 꾸밈없이 드러난다. 방대한 도청기록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역사학과 심리학을 교차시키며 나치 병사의 내면세계를 꼼꼼히 해부한다.
병사들의 공통점은 희생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전혀 무관심하고, 얼마나 죽였는지 살상의 규모나 임무 완수 여부만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수치심, 살상에 대한 회의, 나치 체제에 대한 반감 따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직업인이 주어진 업무를 다루듯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한다. 홀로코스트의 경우도 비슷하다.
결론을 압축하자면 병사들에게 살인과 폭력은 ‘일상’이었다. 평화 시에 벽돌공이었던 사람은 건물을 짓고, 여객기 조종사는 전투기를 몰았고, 회계사는 나치 관료가 되었듯 모두가 무목적적으로 전쟁에 종사했다.
그들은 이전에 하던 일을 전쟁 중에도 ‘아무러면 어떠냐’는 심정으로 이어갔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편다고 했던가. 무차별 살상이 인류사적 야만이었다는 것은 전쟁이 종결되고 나서야 인식되고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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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대한 순종과 전쟁 수행. 저자는 그 연원을 유대인 배제를 통한 게르만 공동체 통합과 국가사회주의로의 매진에서 찾는다. 이 두 가지가 독일인의 사고를 좌우하고 폭력·살상을 정당화한 문화·사회적 ‘프레임’이었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 속의 독일인들은 쳇바퀴 속 다람쥐 운명을 빼닮았다. 그래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반감은 존재했을지라도 집단적 저항은 싹트지 않았다. 따라서 나치 만행을 도덕주의나 악(惡)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