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전격 경질했다. 정치인 출신으로 내년 총선에 출마할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 2개 부처 장관도 교체하고, 외교부 1차관과 국방부 등 외교안보 부처 등 6개 부처 차관을 바꾸는 일부 개각도 단행했다. 이번 개각은 주 수석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둘러싼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온 당일 시행됐다. 박 대통령의 방미 외교 논란과 주 수석의 KF-X 사업 책임론이 외교안보라인 전체에 대한 문책론으로 번지자 서둘러 개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미봉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수석에게 KF-X 사업 논란의 책임을 물은 것은 당연하다. KF-X 기종 선정 과정에서 4대 핵심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듣고도 미 록히드마틴사의 F-35를 선택한 것은 명백한 실책이다. 그는 방위사업청이 당초 발표한 것과 달리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넘겨받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지난 4월 통보받고 2개월 뒤에야 청와대에 보고했음에도 적절하게 사후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보좌하는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외교 굴욕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외교안보 인사 개편이 주 수석의 교체에 그쳐서는 안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외교안보 정책에서 실패한 것은 주 수석만이 아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팀은 그동안 무능과 무전략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김장수·김관진 등 외교에 미숙한 군 출신 인사들을 외교안보의 사령탑인 국가안보실장에 중용하면서 균형 잡힌 외교전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권 초부터 외교부를 이끌어온 윤병세 장관 역시 생뚱맞은 ‘축복론’으로 외교의 중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한국이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중국 열병식 참석 이후 ‘중국 경사론’을 의심하는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방미에 나섰다가 ‘시계추 외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런 외교적 난맥상에 책임져야 할 윤 장관이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유임, 결국 재신임하는 결과를 낳았다.
KF-X 사업은 개발비만 8조원이 드는 국가적 프로젝트로, 그동안 제기된 의혹 때문에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중대한 실책을 외교안보수석 한 명의 교체로 얼렁뚱땅 덮을 수 없다. 방위사업청이 청와대에 늑장보고한 경위와 청와대 및 대통령의 역할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사업 출범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기종 선정을 주도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반복되는 무기도입과 방산 비리를 막을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교안보팀의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외교안보라인을 즉각 교체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현 외교안보팀으로 정세 변화에 대응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를 수석과 차관급 몇 명의 교체로 가리려는 게 아니라면 한·중·일 정상회의 후 외교안보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