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회사 후배가 쓴 칼럼을 읽다 빵 터졌다. 어찌 이리 똑같을까. “여기서부터는 각자 읽어봐!” 32년 전 국사 선생님은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대해 장광설을 풀고, 제3공화국 뒤로는 “큰 사건 연도만 외우라”며 책을 덮었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가 국민교육헌장 공포보다 한 달 빠르고, 지금은 유신보다 5공화국 4대 국정지표가 더 중요하다던 말이 기억난다. 후배가 고교생이었을 1990년의 부산에서도, 내가 있던 1983년의 대전에서도 ‘오늘’을 덮고 끝나는 국사 수업은 매한가지의 ‘웃픈’ 추억이었다.
대학 첫해, 나는 “4월의거, 5월혁명, 10월유신을 거쳐 정의사회와 민주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제5공화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1982년판 고교 국사(하) 교과서를 ‘걸레’로 부르게 됐다. 뒤틀려 입력된 근현대사를 토하고, 유신과 5월 광주의 속살을 접하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국정교과서는 배신이었다. 그날의 교과서 맨 끝 연구진에는 낯익은 교수 2명이 보인다. 박근혜 정부 국사편찬위원장을 바통 터치한 유영익과 김정배였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의지를 처음 접한 건 2013년 봄, 정책사회부장을 맡고 두세 달 지났을 때다. 청와대 고위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을 선배가 들려줬다. “역사교과서는 국정으로 갈 거라는 데….” “쉽지 않을 텐데요.” “글쎄. 그렇게 알고 있으라네.” 발언자의 위치 때문에 ‘대통령 생각’처럼 읽히기도 하고, 대선 때 인혁당 발언으로 홍역을 치른 지 얼마나 됐다고 떠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국정화는 한 사람의 고집과 집념이었다. 남침·북침의 뜻이 헷갈리는 ‘국어 문제’였던 초·중·고생 설문조사를 집권 첫해 ‘중대한 문제’로 불지핀 것은 대통령이었다. 교학사 교과서가 완패할 때는 검정체제를 문제 삼고, 끝내 교육부에 “교과서 제도 개선”을 지시한 것은 지난해 2월이었다. 세월호나 성완종·메르스 사태가 아니었다면 국정화 전운은 더 빨리 왔을 수도 있다.
여권의 “돌격 앞으로” 소리가 세상을 질식시키고 있다. 삶이 통째로 붉게 매도된 역사학자와 교사들의 분노에도, X표로 뒤집힌 여론조사에도, SNS와 신문에 넘쳐나는 냉소와 상소에도 집권자는 눈과 귀를 닫았다. 학자 시절 국정제를 반대한 교육부 차관은 경질하고, 총선 콩밭에 맘이 가 있던 교육부 장관에겐 ‘총대를 멜지, 그만둘지’ 택일하라고 몰아치고 있다. 명분도 힘도 잃은 국정화를 낙동강 전선에 걸어놓고, 총알받이와 솥에 넣을 사냥개만 찾고 있는 격이다.
직접 링에 오른 대통령과 시민들은 너무 멀어져 있다. 대통령이 “역사교육 정상화”를 외칠 때 시민들은 “그래도 국정화는 아니다”라고 고개 젓는다. “왜곡과 미화는 저부터 좌시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에게 역사학자들은 “당신은 객관적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촛불집회에선 역사는 가족사가 아니라는 메아리가 이어진다. 한국 현대사엔 엄연히 그가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겠다”고 공언한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7년 전 뉴라이트 교과서의 시발점인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가서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고 격려하지 않았던가. 시민들의 의심과 불신은 합리적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비호하고, 초등학교 국정 실험본과 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친일·독재 미화 파동을 일으킨 박근혜 정부가 자초하고 쌓아온 것이다.
정부의 행정예고가 4일 남았다. 표변과 궤변도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국정교과서는 대안이 아니다”(중앙일보), “충분한 준비가 됐는가”(조선일보)라고 반대했던 보수언론은 “이참에” 잘 만들라고 목소리를 바꿨다. 가벼움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대통령과 여당 대표 입에선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를 문제 삼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국정교과서가 나온 1년 뒤에 왈가왈부하라는 ‘행정 독재’의 피날레다. 2005년 “사학법에 미래가 달렸다”며 57일간 장외투쟁을 이끈 사람은 박 대통령이었다. 독선의 진폭이 너무 크다.
압도적인 국정화 반대 여론은 허깨비일까. 시민사회의 공명엔 필연과 우연이 겹쳐 있다. 기성세대는 경험으로,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를 한번이라도 봤느냐”는 10대들은 정치가 교과서를 왜곡한다는 직관으로 말하고 있다. 지우려 할수록 친일과 독재는 현재 자신의 문제로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오독하고 있는 민심의 요체다.
대통령이 끝내 스위치를 누르겠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날 집권자는 역사와 맞닥뜨리고, 시민들은 10월의 불통과 독재를 머리와 가슴에 새길 것이다. 한두 번의 알박기 전투가 아니라 국정교과서 전쟁은 그렇게 성패가 갈릴 수 있다. 10월의 마지막 밤, 광화문에선 촛불이 흐르고 서울대에선 역사학대회가 열린다. 길어질 격랑이다. 가을의 중심 10월이 국정화로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