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새 눈이 내리고, 내가 적당히 가난하고, 이 땅에 꽃이 피고, 내 마음속에 환상이 사는 이상 나는 어떤 비극에도 지치지 않고 살고 싶어질 것이다.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리 이어질 것이다.”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고 천경자 화백 추도식에서 장남 이남훈씨(건축가)는 고인의 회고록 중 한 구절을 읽었다. 그의 화려하지만 고독했던 삶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수묵채색화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한 화가이자 뛰어난 문필가였던 천 화백은 문화계 인사와 시민 등 2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작별했다.
3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천경자 화백 추도식에서 미술계 관계자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유족들이 마련한 이날 추도식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추도위원장을 맡고 김택환 경기대 교수,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원장, 주순선 전남 고흥군 부군수 등 14명이 추도위원으로 참여했다. 김종규 추도위원장은 “고인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로 추앙받았다”며 “오늘은 아쉽게 보내드리지만, 천 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24년에는 유족, 후학, 고향 고흥군과 상의해 그를 기리는 행사를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천경자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다 무산된 고흥군은 미술관 건립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날 추도식에 사용된 천 화백의 사진은 ‘미인도’ 위작시비 이후인 1992년 촬영한 것으로, 평소 즐기던 담배를 손에 들고 있다. 모니터에서는 미술관이 소장한 천 화백의 작품이 슬라이드 형식으로 소개됐다. 미술관은 11월1일까지 천경자 전시실에 헌화 공간을 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