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이경일 옮김 |까치 | 368쪽 | 2만원
불세출의 역사학자 홉스봄은 예술에도 해박했다. 고전음악은 물론 재즈와 팝뮤직에 관심이 많았고, 회화와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1960년대부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까지 썼던 짤막한 글들을 묶은 이 책은 홉스봄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홉스봄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20세기 예술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21세기에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부르주아가 향유하던 예술은 근대 이후 길을 잃은 채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홉스봄은 주된 원인으로 자본의 세계화와 기술 혁명을 꼽는다.
![[책과 삶]땅거미 지는 20세기의 부르주아 예술 암울하다](https://img.khan.co.kr/news/2015/11/20/l_2015112101002778600259921.jpg)
부르주아 예술은 자본·기술과 경쟁하면서 진보를 추구했다. 어떤 예술 분야는 전위라는 기치를 내걸고 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대중들은 이제 바흐, 베토벤 음악을 듣기 위해서 연주회장 앞에서 줄을 서지 않는다. 또 미술 작품에 열광하는 풍경은 과거가 됐다. 부르주아 예술은 ‘파열’된 채 문명과 서서히 멀어지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책은 예술만이 아니라 종교, 정치 등 부르주아 문화 전반에 대한 홉스봄의 견해를 담고 있다. 그가 내다보는 21세기 부르주아 문화는 건축, 인쇄, 영화 등을 빼곤 자못 암울하다. 암울하다는 것은 적어도 19세기 부르주아 문명에서 누리던 영광은 되찾기 힘들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근대성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근대성이라는 화두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지만 정작 자본·과학이 진보를 거듭할 때 근대성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끌려 왔던 것이다.
홉스봄은 미래를 예견하지는 않는다. 홉스봄 자신도 역사학자가 미래에 대해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를 기술하는 그의 글 속에는 미래의 모습이 배어 있다. 그렇다면 홉스봄은 예술의 진로에 대해 어떤 결론에 다다랐을까. 이에 대해 그는 추상회화의 시조 파울 클레의 말을 빌린다.
“우리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이것이 저기 바우하우스에서 우리가 시작했던 방식이다. 우리는 공동체와 함께 시작했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공동체에 주었다. 우리는 그 이상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