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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여군 예능으로 본 “여자도 군대 가라”는 심리

입력 2015.11.25 10:51

수정 2015.12.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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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서연 | 인문학 연구자

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함께 읽어보시죠. 연재글에 대한 의견은 h2@khan.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여자도 군대 가라”?: 여군 예능으로 들여다본 군복무와 ‘성평등’의 복잡한 관계

의무와 스펙의 ‘성평등’이라는 문제

“대한민국은 군대다.” 한국의 군사주의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여성학자 권인숙의 단언이다. 2014년 한 해 입대한 군인 중 대학생만 따져도 27만 명이 넘는 상황이니, 군대 문제를 빼 놓고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군대’라는 도식은 그 이상의 더 큰 진실을 가리킨다. 그 진실이란 바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이고 상시적인 군사화다.

특권층 병역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진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평등한 개병제’라는 환상에 금이 간 것은 물론, 군대 내의 인권 유린과 각종 인명사고, 여러 차례의 교전 중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보상의 소홀함 등 소중한 젊음을 징병해 간 국가의 무책임함이 쌓여온 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병역의 신성함이라는 신화의 마지막 보루는 아직 깨어지지 않는 듯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군 가산점 논쟁 등이 징병제에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논의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늘 미필/군필 남성들의 격분으로 채워지고 만다는 현실은 그 증거 중 하나이다.

학군단 장교후보생이 지난 7월14일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학군단 장교후보생이 지난 7월14일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사화된다는 것은 단지 전쟁이나 군대를 직접 겪거나 가족을 군대에 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제정치학을 연구하는 미국의 여성학자 신시아 인로는 “군사화란 위계질서와 복종, 무력 사용에 대한 신념 등 군사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군사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효율적이라 생각하며 군사적 태도를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한국이 군사화된 사회라고 할 때, 징병제의 성별 분할 원리는 민간 사회의 작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윤경 교수는 이를 두고 “‘대졸 군필 남성’이라는 인재상을 원하는 군대-대학-기업의 연계된 삼각구조가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성을 강화하는 한편,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여성을 2등 시민의 자리에 놓아 온 가부장적 국가가 이 구조를 에워싸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 징병제가 주장되는 맥락은 크게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성평등’을 위한 대안으로 내세우는 논리, 그리고 억울하면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식으로 현재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각기 나타난다. 그 중 전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일찍이 사그라졌으며, 전자의 논리를 일부 흡수한 남성들이 ‘성평등’을 이유로 여성들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지울 것을 주장하는 것이 최근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마치 페미니즘 구호를 남성들이 외치는 것 같은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여성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 제기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절대적이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이제는 남자가 약자인 ‘역차별’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젊은 남성들의 새로운 여성혐오와 관련되어 있다. 20대 초반 황금기의 남성들이 군대에 끌려가 있는 동안 여성들은 ‘스펙’을 쌓아 더 유리한 위치에서 더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성별 간의 현저한 임금 격차, 고용 형태의 차별, 전체 생애주기에서의 취업 양상 등을 볼 때 ‘역차별’은 사실상 어불성설이지만(▶관련기사 주간경향 [표지이야기]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올까), 원치 않은 군 복무에 젊음을 빼앗긴 남성들이 당장 느끼는 박탈감 앞에서 이러한 지표는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하는 듯하다.

1999년 군 가산점제 위헌 판결에서 애초 쟁점이던 장애인·여성 차별 및 징병제의 정당성 문제가 자극적인 언론보도로 금세 희석되고 모든 요소가 성 대결로 비화한 이래, 징병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남성들의 몫을 빼앗아가는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혐오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제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입는 손해가 되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여성 징병제 주장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시대, 개인의 자기 관리를 사회가 요구하고 개인들도 적극적으로 내면화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셈이다.

여성 군복무의 예능화 - 남성들의 억울함과 우월감

여성 징병제를 소재로 한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여성 징병제를 소재로 한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주장은 2000년대 국회 토론회나 헌법소원 등의 경로로 공공 의제가 되었다. 최근에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그 대표사례인 네이버 월요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2015년 초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0만 명 이상의 ‘좋아요’를 획득했다. 여성도 의무 복무한다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웹툰은 여성 징병이 ‘성평등’의 전제조건이라는 논리를 여실히 따르면서 현실에서의 군 폭력이라는 문제를 아울러 다루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여성 군인’의 젠더적 맥락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단순히 성별만을 바꾸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다 여성에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를 일삼아 각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일쑤였다.(▶관련기사 ize [뷰티풀 군바리], 이토록 어글리한 만화) 이쯤 되면 여성 징병제에 대한 남성들의 주장이 정말로 성평등이라는 결과를 기대해서 나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을 의심해 볼만하다.

MBC 일밤  예고편.

MBC 일밤 <진짜 사나이 : 여군 특집> 예고편.

웹툰 <뷰티풀 군바리>는 기본적으로 하위문화에 속하는 콘텐츠이기에, 일본 에로만화의 특정 요소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그 논란의 수위가 높은 편이며 수용자층 역시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비슷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콘텐츠인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은 그보다 훨씬 대중적인 콘텐츠로서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상파 채널인 MBC에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1시간30분짜리 병영체험 예능이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며 방영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인의 일상 감각이 깊이 군사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진짜 사나이>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국방부의 적극적인 홍보 의지가 개입된 프로그램으로서, 예전 <우정의 무대> 같은 부대 위문형 군대 예능과 차별화된 관찰형 예능이다. 가혹행위와 총기사고 등으로 실추된 군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국방부의 의도와 관찰형 예능의 ‘성장 서사’라는 형식이 만난 <진짜 사나이>는 출연진들이 군사 훈련을 통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낸다. 빡빡한 일상 통제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등으로 드러나는 군사문화가 체력을 기르고 정신력을 단련하며 팀워크 능력을 향상하는 등의 자기계발과 자연스럽게 얽혀 재현되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에서 군인의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자질들은 기업을 비롯한 민간 사회에서도 역시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는 다양한 남성성들 중에서도 ‘우세하고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지배적 남성성”, 즉 지력, 명예, 용기 같은 이상적 가치를 담지한 남성성(박이은실, 패권적 남성성의 역사, 2013)으로 형상화된다. 군대 체험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자기계발은 이처럼 이미 성별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 덕분에 오히려 <진짜 사나이>는 다른 예능들과 달리 ‘여군 특집’을 기획할 수 있었다. 굳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여성들도 기꺼이 입대할 만큼 군대가 자기계발의 장으로써 매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 되기 때문이다.

MBC 일밤 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각 기수 초반 방영 분량에서 군대 조직에 알맞은 성품을 갖추지 못한 미달자로 묘사된다.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각 기수 초반 방영 분량에서 군대 조직에 알맞은 성품을 갖추지 못한 미달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여자를 군대에 보낸다는 발상의 핵심 속성은 여성혐오의 기획이라는 점이다. 1999년 군 가산점 위헌 판결, 2001년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사건(▶관련기사 경향신문 캠퍼스 때아닌‘군사문화’性갈등) 등을 계기로 벌어졌던 남성들의 격렬했던 사이버테러는 물론, 징병제의 성별 분리 원칙이 문제가 될 때마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극에 달해갔다. 여성들을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자/무능하고 한심한 자/공동체 의식이 부재한 자”(윤보라,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2015)라고 상정하는 최근 여성혐오의 시각은,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출연자들에게 부여되는 초반의 캐릭터 특성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 프로그램은 한심하고 모자란 존재인 여성 출연자들이 관찰형 예능의 이야기 구조에 따라 군사훈련을 받으며 점차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묘사하지만, 그 수준은 남자와 똑같이 군인답기에는 한 단계 부족하게 설정한다. 이는 여성의 군 복무가 성평등의 시작이라는 세간의 논리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오히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은 여성들을 군대에 보내서 고생하는 꼴을 구경하고는 싶지만 그 고생을 통하여 남자들과 동등해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진짜 의중을 대중매체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낱낱이 펼쳐낸 사례에 가깝다.

MBC 일밤 에서 출연자들이 하는 거듭되는 반성의 모습.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하는 거듭되는 반성의 모습.

이는 ‘우리가 남자들의 고생을 잘 몰랐어’라는 여성 출연자들의 거듭되는 반성, 여성성을 버리고 군인으로서 성장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면서도 정작 출연자들이 무언가를 잘 해 낼 때마다 ‘어머니라서 강하다’라는 식으로 칭찬하면서 여성성의 틀 속에 그들을 가두려는 모순적인 행태, 내레이터를 출연자의 남편 혹은 시어머니로 캐스팅하여 여성 출연자를 남성과 동등한 개인이 아닌 가족 내의 ‘예쁘고 안쓰러운 아내’, ‘대견하고 장한 며느리’로 위치시키는 전략 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은 우리 남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겪어보고 느끼라며 억울함을 앙갚음하는 동시에, 그래봤자 너희 여자들은 남자들과 동등해질 수 없다는 우월감을 확인하는 이중주이다.

군복무를 해도 남성과 결코 동등해지지 못한다는 상황은 현실 세계의 여군들을 봐도 마찬가지이다. 신시아 인로는 미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징병제 국가의 여성 군인 사례를 일일이 분석하면서, 이들이 군대 내의 보직 배분이나 승진, 동료들과의 대인관계 등에서는 물론 군대 밖에서도 여전히 성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상세히 밝혀낸다.(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는가, 2015) 이는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애초에 군사 시스템 자체가 남성중심적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복무를 통해 성차별을 해소하기란 결국 요원한 일인 것이다.(임재성,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2011)

육군은 지난 8월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가득 채웠던 예비군복 인증샷을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모아 게시했다.  |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육군은 지난 8월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가득 채웠던 예비군복 인증샷을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모아 게시했다. | 대한민국 육군 페이스북

국방부 역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음을 기왕에 밝혔지만,(▶관련정보 여성의 군대 지원)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요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 주장의 진의는 여자도 정말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긴급하고 실질적인 요구라기보다는 남성들의 희생을 제대로 보상받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국적과 성별 때문에 징병이 된다는 것은 물론 억울한 일이며, 노동력과 시간과 신변의 안전까지를 터무니없이 싼 값에 차출당하는 장병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감정적인 성대결과 여성혐오로 비화할 때, 징병제를 도구 삼아 남성 인력을 무책임하게 다루는 국가는 군복무에 대한 불만의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책임을 여성들에게 손쉽게 떠넘기고 뒷자리로 숨는다. 마치 1999년 군 가산점 위헌 판결 당시 자극적인 언론 플레이에 기대어 남성들의 복무 기피를 여성혐오로 전환시키던 국방부의 모습이나(배은경, 군가산점 논란의 지형과 쟁점, 2000), 지난 8월 서부전선 포격 당시 전쟁 개시와 관련된 유언비어와 동요를 제어하기는커녕 예비군들의 들뜬 군복 인증샷 릴레이를 오히려 부추기던 대한민국 육군의 모습처럼 말이다. 남성들의 희생을 정말 값싸게 여기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여자 아닌 여군’을 꿈꾸는 여성들 앞의 함정

이상의 이야기는 여성의 병역과 관련해서 일반적으로 다루어지는 항목들이다. 남성의 억울함, 남성의 분노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현재 이미 국방부에 소속된 여성 군인들과 그 지망생들의 목소리는 군사주의와 젠더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서 좀처럼 조명되지 않는다. 징병제를 통하여 일반 병사로 입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1950년부터 이미 여군 제도가 꾸준히 시행되어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여군 당사자들은 군 복무와 젠더의 문제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MBC 일밤  출연자들의 면접 장면.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 출연자들의 면접 장면.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은 징병 대상 남성들의 인정 욕구를 해소하는 예능인 동시에 군대 내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의 맥락이 섬세하게 드러난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특집의 무대는 육군 부사관학교이다. 이 곳 여군들에게 군대는 징집된 남성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한 진로로써, 그 선택의 동기가 개인별로 분명하게 존재한다. 특히나 특집 2기의 첫 회에 등장한 출연진 면접 장면은 기업 입사 면접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일 정도이다. 여성들에게 군대는 경력을 쌓고 자기계발을 하려는 이들이 택할 만한 매력적인 선택지라는 점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홍보된다.

김엘리 교수의 연구(2012)에 따르면, 실제 복무중인 여군들에게 군인되기의 의미는 능력 있는 자기추구의 실현으로 요약된다. 이들에게 군대는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곳이며, ‘남성들도 힘들어하는 군대에서 나는 해냈다’라는 경험은 제대 후에도 사회에서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진짜 사나이> 전편에 걸친 군사훈련을 통한 자기계발이라는 서사와 상통하는 것인데, 실제 여군들과 ‘여군 특집’의 출연진들에게는 젠더적인 특수성이 덧씌워진다. 앞서 살펴보았듯 군대에서의 자기계발은 ‘지배적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여군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군대가 다른 분야보다 성평등 지수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이들에게는 남성중심적인 군사 문화 안에서 여성성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 것 또한 전통적이고 부정적인 여성상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MBC 일밤 의 각개전투 장면. 체력이 부족해 얼차려를 제대로 못 받는 출연자와 소대장이 대립하고 있다.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의 각개전투 장면. 체력이 부족해 얼차려를 제대로 못 받는 출연자와 소대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는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한 여성 훈육관들이 모두 공유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 속에는 여성성이란 기준에 미달되는 그 무엇이며, 여성성과 군인됨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가득하다. “소대장은 여러분한테 군인이 되라고 했지 남자가 되라고 안 했습니다”라는 호통에는 남성성도 여성성도 아닌 제3의 지대에 중립적인 ‘군인성’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남성중심적으로 형성되어 온 바람직한 군인의 상이 있고, 군사문화 역시 지배적 남성성을 권장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자이지 말라’는 요구가 결국 ‘남성성을 획득하라’는 요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여군들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중립적인 군인성을 성취하면 성별의 제약을 벗어나 자기실현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군사주의와 남성성의 공고한 관계를 고려할 때 결국 공상에 그치게 된다. 마치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성평등 지향적인 주장이 실은 현재의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듯 말이다. 시스템 자체의 억압적인 구조를 은폐하면서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노력 문제로 치환하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는 실제로 군대에 간 여성들의 처지에서도 깊이 작용한다.

2014년 3월6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여군 임관장교들이 행사 시작에 앞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3월6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여군 임관장교들이 행사 시작에 앞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남성들의 공간에 침투하는 여성

군대에 가야 어른이 되고 진정한 남자가 된다는 흔한 수사. 이는 군사주의의 남성중심성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남성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일말의 진실을 드러내는 말이다. 뒤집어서 보면, 남자가 아닌 사람들도 특정한 과정을 거치면 ‘남성성’을 획득한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재상으로서의 ‘지배적 남성성’을 말이다. 초(超)남성적인 공간인 군대에 진입한 여성 군인들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눈앞에 드러내 보이는 존재들이며, 안정적인 것처럼 여겨졌던 성별 체계의 질서를 불안하게 만든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 연출진은 이러한 불안을 지우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다. 여성 출연자와 여군 부사관 후보생들이 훈련 과정에서 성취를 이룰 때마다 ‘어머니’나 ‘아내’. ‘딸’로서 상찬하는 것은 물론, 그녀들의 말에 일일이 꽃무늬 자막을 달거나 남자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수줍게 얼굴을 붉히게 하는 등의 여성화 전략을 끊임없이 노출하는 것이다. 부사관 계급장을 받는 날 곱게 화장한 얼굴로 스커트 정복을 차려입으며 여정이 마무리되는 것은 모래밭을 구르고 유격훈련을 받던 모습을 지우고 안전한 마침표를 찍는 일인 셈이다.

MBC 일밤 에서 ‘끈끈한 팀워크’를 쌓는 출연자들.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끈끈한 팀워크’를 쌓는 출연자들.

그러나 이 전략은 종종 실패한다. 가령 군사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자질 중 하나인 ‘단결력과 협동심’을 보자. ‘여군 특집’에서 며칠 되지도 않는 짧은 기간 함께 생활했을 뿐인 출연자들과 부사관 후보생들 사이의 끈끈한 팀워크는 연출진들이 열심히 여성화했던 수다 떨기와 감정적인 눈물 짜기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군인은 여자애들처럼 울어서는 안 된다고 다그치는 훈육관과 교관들이 가득한 군대에서, 자기소개를 하다가 울컥하여 울어버리고 훈련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옆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울어버리는 동료를 다독이는 것은 군사화된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어그러짐은 2기 출연자인 걸그룹 f(x)의 멤버인 엠버의 존재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어지간한 남자를 능가하는 신체능력으로 이미 잘 알려진 그녀는 체력검정은 물론 각개전투와 유격훈련에 이르기까지 각종 신체적 혹사를 아무렇지 않게 견뎌낸다. 이처럼 남성성을 지나치게 잘 수행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군사주의의 기반인 성별 분리의 질서를 몹시 교란하는 요소가 된다.

MBC 일밤 에서 걸그룹 f(x)의 엠버가 군복에 이름표를 달 때 능숙한 바느질 솜씨를 보이자 꽃분홍 자막을 달아 여성성을 강조했다.

MBC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서 걸그룹 f(x)의 엠버가 군복에 이름표를 달 때 능숙한 바느질 솜씨를 보이자 꽃분홍 자막을 달아 여성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퀴어 이론가인 핼버스탬에 따르면, 여성의 남성성은 독립성과 자발성의 징표로 읽히지만 이는 사춘기 이전까지에만 용인되는 것이다. 사춘기 이후에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사회문화적 힘에 굴복해 대부분의 ‘톰보이’들이 평범한 여성으로 순응하게 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튀어나온 존재인 엠버의 남성성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여군 특집’의 연출진은 그녀의 행동 중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여성스러운 것’으로 포장한다. 이 시도는 유격 훈련 중 선글라스를 벗은 남성 교관에게 반한 엠버의 반응을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로 승격시키는 지점에서 극에 달한다. 엠버가 알고 보니 이성애 욕망을 가진 ‘정상적인’ 여자이더라는 것을 선포하고 고정시키는 전략이다. 여성의 남성성이 기존의 성별 질서를 어그러뜨리지 않을 것임이 확인될 때에야 사회에서 용인된다는 핼버스탬의 지적은 엠버를 두고 어쩔 줄을 모르는 연출진의 모습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엠버가 보여 준 남성성의 불안정함은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나온 독특한 캐릭터 정도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며, 그녀처럼 유난히 돌출된 인물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모든 여성 연예인과 실제로 초남성적 공간인 군대에서 활동하는 여군 부사관 후보생들은 저 나름의 방식으로 군사주의에 기반한 남성중심주의를 흔들고 있다.

15년을 굴려온 쳇바퀴를 벗어나기

이 글은 여자도 군대에 가면 성평등이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주장을 세 가지 점에서 반박하려고 했다. 첫째, 이 주장은 그 표면적인 의미와는 달리 실제로는 현재의 성차별을 정당화하고 남성의 인정 욕구를 여성으로부터 채우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 둘째, 징병제 여부와 관계없이 현실 세계의 여성 군인들은 여전히 성차별을 받으며 이는 군사 시스템 자체의 남성중심성 때문이므로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셋째, 군대 내의 성별 체계는 실제로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깔끔하게 양분되는 것이 아니며, 여성 군인의 존재는 오히려 기존의 안정적인 성별 질서를 교란시키는 전복력이 있다는 점.

‘여성 징병=성평등’이라는 일견 간단한 도식은 실상 이처럼 복잡한 맥락 속에 놓여 있으며, 여성에게 의무 복무를 시킨다고 해서 현 징병제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징병제 내부에 켜켜이 쌓인 문제들에 대한 시선을 여성혐오의 에너지로 손쉽게 돌려버린 탓에, 15년이 훌쩍 넘은 이 논쟁은 아직도 별다른 논리상의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군사와 젠더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를 도모해야 지금의 폭력적인 쳇바퀴를 벗어날 걸음을 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문화/과학> 83호에 실린 <‘진짜 사나이’와 ‘여자 군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젠더화된 군사주의>를 바탕으로 수정·재구성된 것입니다.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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