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함께 읽어보시죠. 연재글 의견은 h2@khan.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
■복잡계(複雜系), 하나가 아닌 여성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주최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했다. 여대생들은 ‘반여성정책, 국정교과서 추진, 세월호 진상 은폐, 박근혜는 이대에 발도 붙이지 마라!’, ‘남녀임금격차 OECD 1위, 성평등지수 117위, 박근혜는 ’여성’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구호의 피켓을 들고 여성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했다.
사복 입은 여경들을 앞세운 경찰은 여대생들을 가로막았고,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여성지도자들이 저항하는 여대생들을 질책하는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소셜미디어에는 해방이화의 기개를 지지하는 ‘이대 나온 여자’들의 훈훈한 응원이 이어졌고, 라면에 동원된 몰지각한 아줌마’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까지 치운 개념 여대생들을 칭찬하는 모습도 보였다. 개념녀와 아줌마는 결국 동전의 양면이 됐다. 언제나 그렇듯 나대는 여대생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악성댓글이 나왔다.
여대생들이 지난 10월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여성직능단체 등 50여개 회원단체와 17개 시·도여협 500만 회원을 거느린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은 대표적 보수여성단체 우산조직이다. 전국여성대회는 여협에서 1962년부터 매년 개최해 올해로 제50회를 맞았다. 이 대회를 두고 여협은 대한민국 여성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여성발전을 통한 국가발전을 추동하는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사회발전과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을 표창하고 격려하는 뜻 깊은 자리라고 한다. 전국여성대회에서는 여협 초대 회장이자 이화여대 총장이었고 제1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던 김활란박사를 기념하여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현직 여협 회장은 얼마 전까지 한국의 성평등정책연구를 책임지는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이었고, 전 이화여대 교수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여협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여성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을 알리는 “여성공천 30% 의무화 1만명 서명 돌파”라는 문구의 팝업창이 뜬다.
이 사건의 상황을 설명한 짧은 글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여성’으로 성별이 특정된다. 여성정치인/여성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성평등이 언급된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지만, 서로 다른 위치를 드러내며 교차되는 가운데 얽혀서 존재한다. 성평등 개념 역시 하나의 정답이 있다기보다 어떠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의미화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세월호 진상규명 등이었지만, 이화여대 학생들의 구호 중 문제적으로 드러난 갈등의 지점은 ‘여성’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걸스데이는 2013년 발표한 ‘여자대통령’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돼 여자가 먼저 키스 하면 잡혀가는건가?”라고 노래한다.
■보편성(普遍性), ‘누구를 대표하는가’라는 질문
근대적 이념에 기반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전제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대표(representative)는 추상적 개인으로 보편화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치공간에서 대표는 언제나 보편과 특수라는 이중적인 위치를 넘나들게 된다.
‘여성대통령 박근혜는 여성을 대표하는가?’ 혹은 ‘여성정치인은 (남성보다 더) 성평등하고 여성친화적인가?’는 페미니즘 또는 여성정치인들에게 계속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다. 반면 남성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이 ‘모든 남성을/집단으로서의 남성을 대변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제기되지 않다. 이러한 질문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이 인간으로서 존재 자체의 보편성이 부정되는 상황의 역설적 표현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보편성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보편성의 ‘맨얼굴’은 게리맨더링이다. (중략) 특수는 보편의 반대말이 아니라 하위 개념이다. “여성부가 있으니 남성부가 필요하다”거나 “소수자할당제는 역차별이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지배세력의 피해의식이 ‘평등(같음)’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평등의 반대말은 차이가 아니라 불평등이며, 평등은 기존 ‘주류’세력과 같음을 주장·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기준을 재구성함으로써 사회정의와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질문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고, 대답할 의무는 누구에게 지워지는가? 페미니스트 정치는 ‘누가 여성인가’를 질문하고 결정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질문하며, 여성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정의하는 권력을 해체하고자 한다. ‘정치인, 권력자는 남성’이라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페미니스트 정치가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보편적 혹은 객관적’이라고 알고 있는 세계가 남성의 경험을 기반으로 구성된 것임을 인식할 때, 페미니스트 정치가 제기하는 배제된 이들의 경험과 관점은 사회구조적 모순과 억압에 대한 통찰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1960년 7월19일 백발의 할머니 등 2000여명의 여성들이 서울 시내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축첩에 반대하는 당시로선 이례적인 ‘여권(女權)’ 시위를 했다. 이들은 “여성은 축첩자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등의 구호를 들고 ‘낙선 운동’을 벌였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참정권(參政權), 죽거나 미쳐버리거나
오래도록 정치 공간에서 여성은 삭제된 존재였다. 사회계약을 설파한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는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그가 프랑스인이든, 독일인이든, 국왕이든, 노예이든, 학자이든, 귀족이든, 저 미개한 아프리카 원주민조차도 우리와 똑같은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 여성은 예외다. 여성에게는 인권이 없다. 그러므로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으며,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고 천부인권을 설명했다. 여성참정권은 근대적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천부인권론에서조차 담지 못한 공백이었다.
여성들은 ‘형제계약’에 기반 한 근대기획에 반론을 제기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여성혁명가들이 제안한 <정치상 남녀가 동권(同權)이어야 한다>는 건의나, 여성이 빠져 있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대신하고자 한<여성권리선언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혁명정부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혁명 정신을 추구했던 여성들에게 집회를 금지하고, 여성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권리마저 제한하기도 했다. 결국 ‘자유의 아마존(Amazone de la Liberte)’이라 불렸던 T. 메리쿠르는 미쳐버렸고, <여성권리선언>을 쓴 O.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처형되었다. 남성 시민만으로 형성된 근대사회에서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이 설 수 있는 자리는 단두대뿐이었다.
단두대 앞에 선 올랭프 드 구즈(1748~1793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1893년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었다. <1893년 여성 참정권 탄원서>(The 1893 Women’s Suffrage Petition)는 당시 뉴질랜드 성인 여성 인구 4분의 1에 가까운 수가 서명했다. 의회 정치의 나라인 영국에서는 1928년에야 남성과 마찬가지로 21세 이상의 여성에게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됐다. 시민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1946년, 직접민주주의로 손꼽히는 스위스는 무려 1971년이 되어서야 보편적 여성참정권이 법으로 통과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들어 지방선거에서 여성이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되었을 뿐, 보편적 참정권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2015 성격차보고서에 나온 한국의 성격차지수. 검은선이 평균, 푸른색은 한국의 지수다.
세계경제포럼은 매년 연말이 되면 각국의 성평등 현황을 지수화 한 보고서(Gender Gap Index Report)를 발표한다. 성격차지수(GGI)는 정치·경제·교육·건강의 4개 영역을 지표로 활용하는데, 한국은 0.651점으로 조사대상 145개국 중 115위에 그쳤다. 한국은 세계평균치를 보더라도 다른 영역에 비해 정치영역에서의 성평등 수준이 유독 낮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득권이 움켜쥐고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독점하려는 권력이 바로 정치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영국과 북미지역에서는 개봉 영화 <서프러제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메릴 스트립, 캐리 멀리건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에멀린 팽크허스트 등 1900년대 초 영국 과격파(?) 여성참정권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아직 국내 개봉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제도적으로는 1948년 제정 헌법에서 여성참정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면 당연한 듯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군대나 가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사회가 과연 여성참정권에 동의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성들에게 <서프러제트>는 영화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혁명이다.
■2012년 대선의 복기(復棋), ‘준비된 여성대통령’
생각해 보면 한국 정치사에서 지난 대선만큼 ‘여성’이 전면 등장한 적이 없다. 등록된 후보의 과반수 이상이 여성이었고, 선거의 승자로 당선된 보수여당 대선후보도 여성이었다. 여러 명의 여성 후보가 한꺼번에 등장했지만 뭉뚱그려진 ‘여성’이었을 뿐, 아쉽게도 각각의 후보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여성‘들’인지를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 한편에서는 한국사회가 ‘여성’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여권이 향상됐다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최고권력자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성평등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며 여성과소대표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상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대통령의 등장은 성평등 착시현상을 가져온다고 우려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해부학은 숙명’이라고 할 만큼 여성과 남성 간의 신체적 차이가 여성성과 남성성을 가르는 근원이라고 믿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이런 통념을 거부하며 ‘생물학적 성(sex)’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제기된 것이 ‘사회적 성(gender)’이라는 개념이다. 젠더(gender)는 ‘여자답게 또는 남자답게’ 사회문화적으로 내면화된 성별규범으로, ‘만들어진 성적 차이’이다.
나아가 퀴어이론가인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와 젠더 모두 사회적 구성물로 서로 분리하기 어려우며, 신체적 차이가 ‘본질적’이라는 생각 자체도 사실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고 설명하면서 섹스/젠더 이분법을 해체한다. 페미니스트 정치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섹스/젠더 이분법을 넘어 ‘사회현상에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젠더위계’를 드러내고 문제화 하는 것이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여성’이라는 존재를 불러낸 것은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로부터 시작됐지만, 이 발화에 응답해 박근혜 후보를 여성으로 재현시킨 것은 어쩌면 민주당과 진보진영이었다. 사실 2008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에도 진보진영 원로 함세웅 신부는 여성대통령에 관한 질문에 “여자는 안 된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민주당 다수 정치인들은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이거나 섹스/젠더 이분법에 기반한 인식을 드러냈다. 박근혜 후보를 향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여성이 어떻게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느냐, 퇴근하는 남편의 저녁을 준비해보지도 않은 여성이 평범한 여성들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나,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이다 등의 언설을 했다. 민중미술가 홍성담은 풍자화 ‘박근혜 출산도’를 내놓기도 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심지어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말로 박근혜 후보를 성적 타자화 시켰다.
보수정치가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를 활용해 정파적 이해관계를 젠더 이해(gender interests)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동안, 진보 남성들은 젠더 개념의 역사성과 정치성을 간과했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문제에 대한 빈약한 이해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이다.
2012년 12월18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투표를 앞두고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페미니즘의 역설과 이중과제
그래도 지난 대선의 경험이 남긴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헌정 사상 최초 여성대통령’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끄집어냈고, 여성정치세력화운동이 ‘어떤 여성과 연대할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또한 젠더관점에서의 민주주의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민주화는 여성들에게 있어 단선적인 성장의 경로를 안내해주지는 못했다. 민주화가 당연히 민주주의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연속선상에 서 있다.
역사학자 조앤 스콧의 말처럼 페미니즘 정치운동에는 “여성을 배제하는 정치에 맞서 성차를 제거하고자 하는 한편, 성차를 통해 담론적으로 나타난 ‘여성’의 편에서 권리를 요구하면서 제 자신이 없애버리고자 한 성차를 생산”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후발 민주국가인 한국은 민주정부 수립 이후 국제사회로부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근대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주요한 도구로 ‘성평등 정책’을 채택했고, 여성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할당제 등도 큰 사회적 논란 없이 제도화되었다.
진보여성운동이 채택한 제도화 전략은 일정정도 단일한 집단으로서의 ‘여성’ 개념을 바탕으로 해왔다. 정치영역에서 여성들이 공유하는 ‘배제의 경험(experiences of exclusion)’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여성계’가 여성정치할당제를 요구하는 연대를 형성하는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성운동이 발 딛고 있는 사회는 진공상태가 아니었고,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폭넓은 연대를 위해서는 낮은 수준의 합의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인 철저함을 관철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척박하기에 여성정치참여운동은 때때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실천을 해야 했고, 어떤 국면에서 의미 있고 부분적으로 옳았다. 여성정치할당제에 관해서는 여성주의자 내부에서도 찬반이 나뉘기도 했고, 여성정치할당제가 자체가 효율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누적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로서 여성정치할당제의 효과는 부인하기 어렵다.
통상 30% 정도로 이야기되는 여성정치할당제 임계치(critical mass)는 발화점이지 목표치가 아니다. 여성정치할당제 제도화의 단기적 과제는 짧은 시간 안에 제도정치에 보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 끼어들기는 부분적으로 가능했지만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정치 구조와 문화를 재구조화 하는 새판짜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지적되고 있는 여성정치할당제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임계치에 크게 못 미치는 여성정치참여 현실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정치참여의 수적 확대와 질적 전환은 도식적 양자택일의 관계로 보기 어렵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와 공정한 경쟁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인적 충원과 정치엘리트 형성 과정의 변화,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전제로 한다. 정치 자체가 재구성되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요 없는 페미니스트 정치가 가능하다.
정치적 보수화라는 흐름 속에서 ‘여성’대통령이라는 존재는 역설적으로 여성정치운동의 자기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정치참여 확대는 페미니스트 정치의 최종적 목표가 아니다. 기득권 남성의 정치 독점을 해체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페미니스트 정치이고, 다양한 여성들의 정치참여 확대는 그 과정의 한 단면이다. 여성/남성, 특수/보편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복잡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더듬어 상호인정의 폭을 넓히는 민주주의의 주체적 재구성이 페미니스트 정치의 전망이다.
캐나다 신임 장관들이 지난 11월4일 새 내각 발표 후 저스틴 트뤼도 총리(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와 오타와 총독관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새 내각은 남성 15명, 여성 15명으로 사상 처음 남녀동수를 이뤘다. 원주민과 난민, 장애인 등 면면도 다양하다.성비가 같은 이유를 묻자 트뤼도는 “2015년이니까요”라고 답했다. 한국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의원이 47명(15.7%), 현재 장관 17명 중 여성은 1명이다. |신화연합뉴스
1회 메갈리아의 ‘거울’이 진짜로 비추는 것(윤보라 여성학 연구자)
2회 “여자도 군대 가라”?: 여군 예능으로 들여다본 군복무와 ‘성평등’의 복잡한 관계(조서연 인문학 연구자)
3회 데이트 성/폭력에 대한 소고: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김보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4회 남성진보논객과 담론헤게모니: ‘청년진보논객’ 데이트폭력 폭로에 부쳐(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5회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6회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7회 “나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8회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사회에서는 안될 일인가?(박이은실 여성학자)
9회 그들의 외침: 일 하겠다. 그러니 돈, 욕, 매 앞에서 평등을 허하라!(홍태희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
10회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11회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 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손희정 영상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