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명료해졌다. 제1야당의 총선은 ‘망’했고, 야권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한때 ‘옛사랑’이던 ‘그 당’이 내년 총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있기도 어렵다. 지난 열흘 야권을 흔든 ‘문·안(문재인·안철수) 드라마’가 증거해준 미래다.
서로를 향해 엇갈린 주문만 내놓던 그들은 미움과 분노를 우회하는 지혜 대신 ‘맞짱’을 택했다. 야권은 피할 길 없는 재앙을 눈앞에 두고 ‘지혜가 아닌 어리석음의 시대를, 최고가 아닌 최악의 시절’(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을 견뎌야 하게 됐다.
![[아침을 열며] 이제는 ‘문·안’을 놓을 때](https://img.khan.co.kr/news/2015/12/06/l_2015120701000827000070091.jpg)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지, 죽을 수밖에 없다. 과거 일본 대학생들이 제일 선호하는 게 일본항공이었다. 우리는 삼성이고. 그런데 방만한 경영으로 상장폐지가 됐었다. 5년간 구조조정을 세게 해 다시 살아났다. 어떻게 해서 살았냐, 망하니까 살았다.”
문·안의 긴급 회견을 지켜본 한 중진 의원의 이야기다. 탄식인지, 전망인지 모를 그 말 속에 문·안에 대한 실낱 같던 미련을 툭 끊어버린 후의 편안한 모습이 엿보였다.
‘100%’ 공감한다. 온전히 망해야 한다. 그래야 또 온전히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결국 야권 리더십 재구성의 출발점이 ‘문·안의 극복’이란 게 분명해진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지긋지긋”(문 대표)한 문·안의 물과 기름 리더십을 놓아버리는 게 시작인 셈이다. 새로운 리더십의 자원은 있다.
사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좀 더 일찍 맞짱이, 파국이 시작됐어야 한다. 안 전 대표가 3년 전 겨울, 후보 단일화 틀을 던져버렸을 때 이 같은 야권의 운명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돌고 돌아 안 전 대표와 문 대표가 다시 한 지붕 아래서 만났을 때도 둘 사이는 서늘했고, 불안불안했다. 안 전 대표가 지난해 재·보선 패배로 밀려난 자리를 문 대표가 채우겠다고 전당대회에 나설 때도 불길한 예감들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대중의 지지’라는 가장 중요한 자산을 가진 그들이었기에 알고도 미련을 끊지 못했다. 그 당과 지지자들은 모두 속절없이 그 자산 때문에 볼모로 잡혀 여기까지 왔다.
“그사이 실무진 선에선 두 사람이 같이하도록 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실무진이 다 세팅해 놓고 되겠다 싶어 만나게 하면, 곧바로 판이 깨졌다. 둘만 만나면 꼬였다. 만나서 서로 오해가 있어도 물어보지도 않고 돌아와선 화만 냈다. 딱 ‘초딩’ 같다.”
한쪽 진영 참모의 전언이다. 문·안 사이 ‘미움’은 ‘대의’보다 강했다.
문제는 ‘문·안’ 그들이 너무 ‘진실한 사람’들이었던 탓일 게다. 진실한 사람들이다 보니 잠시 눈 질끈 감고 사랑하는 척 연기를 할 수는 없었을 터다. 뱃속에 칼을 숨길지언정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며 설득하고 협력하는 척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서로 상대를 ‘외통’으로 모는 것으로, 빨리 승부를 내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실했기에 ‘여우의 지혜도, 사자의 힘’(마키아벨리)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이 정치 지도자가 아니란 걸 스스로 증명했다. “사람 좋다. 순수하다”지만 정치 기술도, 의지도, 끈기도 없는 문 대표나 새정치에 대한 의욕에도 소통·배려는 서툰 안 전 대표나 ‘자격’이 없긴 마찬가지다.
문 대표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리듯 난마 같던 관계를 “지긋지긋하다”는 말과 함께 단칼에 끊어버렸으니 일단은 시원했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선 파괴적 해법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불안은 해소했기 때문이다. 실제 회견장에 들어설 때부터 문 대표 얼굴엔 빙그레 미소가 돌았고, 갈수록 환한 웃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당’ 구성원과 지지자들이다. 문 대표 회견 직후 전화를 걸어온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의 첫마디는 “(이제) 나 어떻게 해”였다. 주류 아니면 비주류, 회색지대는 없는 ‘그 당’에서 그 또한 어느 한쪽 사람일 테지만 본능은 ‘선택’의 고민이었다. 부모의 이혼을 목도하는 자식들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니하는 따위의 이야기도 위안이 안된다.
애석하게도 야당 지지층은 입맛이 까다롭다. 단일하지도 않다. 지긋지긋한 문·안의 ‘미움’ 드라마를 이제 그들도 끝내고 싶을 터다. 결국 야권의 희망과 부활의 재구성은 두 ‘초딩 정치인’의 퇴장을 의미하는 게 될 공산이 크다. ‘가치’를 ‘미움과 권력’으로 바꿔치기한 그들 마음속 불한당들을 더 이상은 지지층이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주류 질서와는 다른 열망들을 담아내며 한국정치사에서 ‘혁신의 수원(水源)’이던 그 당을 다시 볼 수 있는 희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피 흘린 옛사랑’은 그렇게 더욱 피를 흘리고서야 돌아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