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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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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여성을 사랑한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입력 2015.12.07 10:39

수정 2015.12.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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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함께 읽어보시죠. 연재글 의견은 h2@khan.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나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지난 8월4일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기본조례에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을 명시한 대전시에 공문을 보내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아무 일 없이 진행되던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에 갑자기 딴지를 걸게 된 배경에는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의 민원이 있었다. 이 단체가 대전시 성평등 조례의 해당 조항에 민원을 제기하자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기본법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라며 위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대전광역시의 성평등 기본조례는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를 벗어났다”며 개정도 요청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여성 성소수자들은 즉각 여성가족부를 향해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많은 여성 단체들과 성소수자 단체·개인은 성소수자를 성평등 범주에서 삭제한 여성가족부 입장을 비판하며 기자회견과 항의행동, 궐기대회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결국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는 지난 9월16일 해당 조항을 삭제, 개정했다.

지난 10월10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여성가족부의 차별 정책에 항의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지난 10월10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여성가족부의 차별 정책에 항의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국민으로 등록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1번 아니면 2번의 성별 분류코드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한다는 ‘양성평등기본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소수자란 어떤 존재란 말인가. 결국 여성가족부는 성소수자를 아무런 권리도, 책임도, 참여 기회도 없는 ‘실체 없는 분류 코드’로서만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여성가족부를 향해 던졌던 질문을 우리 사회에,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본다. 과연 ‘여성’은 무엇이며, ‘양성평등’, ‘성평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소수자는 정말 양성평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나?

| 인권재단 사람

| 인권재단 사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이 던지는 문제제기

사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듯 하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질문이다. 애초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구분 자체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보다 몇 세기 앞선 1851년 수많은 대중 앞에서 이 질문을 던진 흑인 여성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문을 잠깐 보자. 오하이오주에서 여성 권리를 위한 집회가 열린 날에 한 연설이다. 당시 노예제 폐지 운동에 함께하던 여성들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활동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가입 자격조차 받지 못했다. 이들은 엄연한 성차별적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예제 폐지와 성차별 폐지에 함께 나서던 중이었다. 이 날도 남성들은 집회에 모인 여성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 와중에 노예 신분이었다가 1827년 겨우 뉴욕주 법으로 자유를 얻었던 흑인 여성 소저너 트루스가 발언을 하려고 나섰다. 백인 여성들은 가뜩이나 야유가 쏟아지는 판에 흑인 여성이 나서면 더 분위기가 안 좋아질까봐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렇게 야단법석인 곳에는 뭔가 정상이 아닌 게 있음이 틀림없어요. 내 생각에는 남부의 검둥이와 북부의 여성 모두가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백인 남성들이 곧 곤경에 빠지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건 전부 뭐죠?

저기 저 남성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것으로 모셔 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최고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탈 것으로 모셔진 적도, 진흙구덩이를 지나도록 도움을 받은 적도, 무슨 좋은 자리를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 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 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난 1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봤어요. 내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중략)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말하네요. 여성은 남성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죠? 어디서 왔느냐고요? 신과 여성으로부터 왔잖아요! 남성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소저너 트루스는 이 짧은 연설에서 단 몇 개의 명료한 문장만으로 ‘여성’이라는 범주가 실은 얼마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흑인 노예로서 거친 노동으로 내몰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삭제되었다가, 억지로 결혼을 시키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들을 다시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할 때에는 강요되었던 그 ‘여성’. 백인 여성에게는 보호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순종을 강요하고, 흑인 여성에게는 폭력과 착취를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던 그 ‘여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 그 의미와 자긍심을 재구성한 ‘여성’에 대해서. 하기에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던지는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그녀의 질문은 자신을 여성으로서 인정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당신들이 규정하고 필요에 따라 규율하려 하는 여성의 범주에 나를 끼워맞추지 말라”, “나는 내가 정의하는 여성 주체로서 나의 권리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소저너 트루스(1797~1883년)

소저너 트루스(1797~1883년)

그렇다면 도대체 ‘여성’이란 무엇인가

루소는 “국왕이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에게나 천부인권이 있으며, 저 미개한 아프리카 흑인들조차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만은 예외다. 그러므로 여성은 교육을 받을 필요도,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루소의 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애초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생물학적 조건 때문에’ 그저 예민하고, 감정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교육을 받거나 정치에 참여할 필요도 없이 아이를 낳고 집안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시대에서부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명제를 발판으로 삼아 꾸준히 젠더 개념을 발전시켰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그러나 ‘여성’이란 범주는 그 오래 전 규정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는 누구나 ‘섹스는 생물학적인 성이고, 젠더는 사회적인 성이다’라는 정의를 마치 답안지에 적어낼 정답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생물학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범주는 어디까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성별을 구분하는 기준 중에서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성별을 결정짓는 생물학적인 기준으로 흔히 염색체나 호르몬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과학은 아직까지 염색체나 호르몬 연구를 통해서도 무엇이 논리적 모순 없는 결정적 요인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또는 생식기의 모양이나 가슴, 근육 등 신체적인 외양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이 역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여성 생식기를 지니고 있다 해도 가슴은 그리 크지 않다거나, 가슴보다 어깨와 근육이 더 발달한 여성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근육이나 체력을 발달시킬 수 있음에도, 여성으로 키워졌기 때문에 애초 성장 과정에서 이를 키울 수 있는 활동들이 제한되었다면 이것은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특정 호르몬의 특성을 남성적이라거나 여성적인 것으로 구분한 기준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성들이 많이 하는 머리 모양을 할 때라든가, 남성들이 주로 입는 옷을 입고 있을 때, 호탕하게 웃고, 격한 몸짓을 할 때 우리는 여전히 “여자답지 못하다”라는 핀잔을 듣는다. 직장이나 스포츠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여자인데 대단하다”거나 “여자치고 훌륭하네”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가 하면 질병·장애가 없는 예쁜 아이를 잘 낳아 발달 단계와 학업 성취 수준을 높여가며 사랑과 헌신으로 키우고, 요리와 살림도 척척에 시부모님도 잘 모시며, 직장에서도 성과를 잘 내고, 그 와중에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게 살림도 잘 꾸려야 ‘좋은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신체적 특성이나 질병, 장애, 외모 등에 따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섹슈얼리티 자체를 삭제당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남자를 사랑하는가’라는 결정적인 분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분류 기준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차별의 근거로서 활용된다. 때문에 우리는 ‘여성’이라는 규정을 지금 누가, 무엇을 위해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성전환 연예인 하리수씨.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최초의 성전환 연예인 하리수씨.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성소수자를 삭제한 성평등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

앞에서 짚어본 바와 같이 사실상 ‘여성’을 분류하는 기준들은 그 자체로 여성들이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어떤 신체 기준을 지니고,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를 규정해왔다. 이를 통해 여성들을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인큐베이터이자 필요할 때는 생산 영역의 2차 노동력으로 다루어왔다. ‘남성’이라는 분류 기준 역시 마찬가지이다. 튼튼한 근육과 건강한 몸을 가지고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며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있어야 ‘진짜 남자’라는 규정이 많은 남성들을 경쟁과 폭력의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어 왔다. 이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곧 ‘여성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으로 심각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 사회는 폭력을 통해 이 경쟁 대상들을 서로 길들이면서 그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강화시킨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 따라 특정한 규범과 성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위계와 차별, 억압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를 만들어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별에 따른 구분과 통제가 단지 남성과 여성의 차별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이 어떤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도록 할 것인가, 사회적 필요에 따른 자녀 수를 몇 명으로 하고 어떻게 이를 통제·관리할 것인가, 어떠한 노동력으로 기르고 교육할 것인가, 누가 임금노동을 하고, 누가 결정권을 가질 것인가, 누가 종교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것이며, 누가 정치를 할 것인가, 누군가가 돌봄을 필요로 할 때 누구에게 그 역할을 맡길 것인가, 누가 무엇을 소비하게 할 것인가 등의 모든 문제가 성별 규범과 성역할 통제를 근간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별의 구분과 그에 따른 통제는 결국 정치, 경제, 노동, 복지, 교육, 의료 같은 사회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문제다. 또한 이를 통해 노동의 위계, 생산과 재생산의 위계, 가치의 위계를 만들어 내기에 성차별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장애차별 등 수많은 차별의 고리와도 연결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양성평등은 단지 여성과 남성의 물리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규범에 따른 통제를 근간으로 유지되어 온 이 사회의 모든 구조를 건드릴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에서 “성소수자에 관련된 정책은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한 여성가족부의 입장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성적 규범과 성역할 통제의 한 가운데에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기준과 규범을 가로지르는 성소수자들의 위치야말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질문 한 가운데에 놓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쪽 벽이 성형외과 광고로 빼곡한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출입구로 시민들이 내려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양쪽 벽이 성형외과 광고로 빼곡한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출입구로 시민들이 내려가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강은하 씨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에세이(▶바로가기)에서 자신이 성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차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난 용감해져야 했다”

이 글에서 강은하 씨는 “겉모습이 확연히 ‘여성의 모습’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와 세상 사이의 마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마찰은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때문에 경험한 차별이 아니라 ‘여성의 모습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경험한 차별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모습을 지니게 되면서 “지난 삶 동안 겪어본 적이 없었던, ‘여성의 일상’에 숨어있던 께름칙한 시선들을 경험했다”고 서술한다. “한여름 땡볕에 더워 죽겠어서 얇고 짧은 옷을 입고 돌아다닐 때면, 나의 몸을 대놓고 위아래로 훑는 아저씨들의 끈적한 시선이 나를 괴롭혔”고, 여성으로서의 삶에 적응해 갈수록, “세상은 나에게 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또,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면 심심찮게 그녀를 노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야 했고, 때로는 “너무 쉽게 ‘남자 지갑이나 텅텅 비우는 나쁜 여자’ 취급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녀의 외모를 언급하며 “수술하시는 김에 여기랑 여기 고치면 예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미용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여성’이라는 성별 기준에 따라오는 숱한 외모 차별과 대상화, 일상적인 폭력의 위험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러이러한 몸매와 외모, 행실을 보여야 한다는 기준들은 수많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에게 더 강한 ‘여성다움’의 증명을 요구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요구로 돌아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여자같다’는 이유로 남자 아이들로부터 폭력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거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가오는 불평등한 시선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게 되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삶은 과연 양성평등과 동떨어진 문제일까? 굳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다움’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누구라도 ‘여자 같이 군다’, ‘나약하다’, ‘게이냐’는 비난을 받으며 학교와 사회에서 괴롭힘이나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남성들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다른 문제일까?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교정강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교정강간’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범죄는 레즈비언인 여성들을 이성애자로 교정하겠다는 명분으로 벌어지는 심각한 폭력이다. 그런데 이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확실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축구를 하는 여성, 남자 같이 구는 여성들은 누구든 교정강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벌어진 교정강간 피해자의 사연을 전하는 기사. | 인디펜던트 갈무리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벌어진 교정강간 피해자의 사연을 전하는 기사. | 인디펜던트 갈무리

이 폭력의 가해자는 특정한 범죄자들이 아니라 마을의 남자들이나 친척들, 심지어 그녀의 엄마나 마을의 목사님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교정강간의 피해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어느 날 엄마가 교회에서 모시고 온 목사님으로부터 수 년간 강간 피해를 입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마저도 ‘아직 이성애자가 되지 않았으니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며 빼앗긴 후 다시 다른 남성에게 보내진 이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지참금을 목적으로 삼촌이 자신의 친구에게 조카를 넘기고 친구는 그녀를 강간한 후 ‘아직 이성애자가 되지 않았다’며 다시 돌려보내는 식으로 계속해서 강간을 당한 피해자도 있다. 이토록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정강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가족과 마을을 위해 끊임없이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낳고, 아픈 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여성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여성들을 길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들은 이런 사회 구조에서 ‘여성으로서 응당 해야 할 역할을 거부하는 여자들’이자, ‘남자들이 차지해야 할 여자들을 빼앗아 가는 여자들’로 간주되어 교정강간의 대상이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은가? 한국의 레즈비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성인 척 하고 잠입해 만나자고 한 후 ‘아우팅’(타인의 성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알리는 일) 협박을 하며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 가해자들에게 시달린다. ‘여성적’인 외모와 행실을 요구하는 수많은 기업들은 그들의 기대와 기준에 어긋나는 여성들을 고용에서 배제하고, 일터에서도 끊임없이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한다.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규정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의 조건과 환경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레즈비언인 여성들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성별 규범과 성역할의 압력에 부딪히고,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숱한 폭력들을 겪으며, 동시에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 폭력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답해야 한다. 레즈비언 여성들이 경험하는 이런 차별과 폭력, 성역할의 억압이 과연 동떨어진 문제인가? 이 여성들은 여성이 아닌가? 양성평등의 대상이 아닌가? 과연 어떤 근거로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넘어서기 위하여

나 역시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다. 여성가족부를 향해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수차례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을 곱씹어본다. 나에게 이 질문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여성가족부를 향해 “왜 나를 여자로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떼를 쓰는 게 아니다. 소저너 트루스가 그러했듯이 이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규정해 왔는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역시 규정된 의미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재구성하는 의미로서의 여성을 다시 이야기하고, 또한 선언하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f(x)의 멤버 엠버는 TV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이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하루 속히 폐지되면 좋겠다)에서 월등한 체력과 훈련 수행 능력을 보여준다.하지만 방송은 굳이 군복에 이름표를 다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천상여자’라는 자막을 넣고, 꿀성대 교관에 대한 호감을 부각시키며 엠버가 여자임을 각인시킨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지만 짧은 머리모양에 남자 같은 스타일링을 고수하는 엠버에게는 끊임없이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이 따라다녔고, 외모가 남자 같다는 이유로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소문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정작 엠버는 이런 짐작이나 규범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모습 그대로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남녀 연예인들과 두루 친분을 과시하며 잘 지내고 있다. 애초에 그녀를 굳이 ‘남성’이나 ‘여성’ 중 한 가지의 틀로 규정하고 싶은 것은 외부일 뿐, 그녀는 ‘규정되지 않는 여성’으로 스스로의 삶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위계와 차별의 근거로서 규정지어진 여성을 넘어, 여성을 주체적으로 재설정하는 것은 이렇듯 성별을 분류하는 기준과 규범 자체를 해체하고 우리 각자의 것으로 재조직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동일한 범주의 한 묶음으로써 여성 차별을 다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규정으로 통제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찾아 꺼내들어 억압과 차별의 고리들을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역설적으로 이 물음을 넘어서기 위한 질문인 셈이다.

지난 3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f(x) 엠버.

지난 3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f(x) 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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