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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87년 체제

입력 2015.12.16 20:38

수정 2015.12.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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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하면서 야권이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총선을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야권의 ‘분열’은 야권의 침몰을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감정적 적대와 절망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좀 더 대국적인 차원에서 최근 정국의 의미를 차분히 따지고 전환의 길을 찾아야 한다.

[경제와 세상]기로에 선 87년 체제

현 정국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87년 체제’에 의해 떠받쳐져 있다. ‘87년 체제’는 1987년의 제9차 헌법 개정으로 형성된 헌법체제다. 87년 체제는 기본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었으나, 부분적인 민주화 체제였다. 정권 교체도 경험하여 민주주의 공고화의 고비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대통령의 권력 독점과 양당 적대체제를 고착화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현재 야권이 안팎으로 분열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선거에서 이길 능력이 약한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 정당 지도부의 선거 영향력이 약하면 분열의 유인이 생기고 장기적 관계가 훼손된다(이종은·안정은 논문). 그간 새정치연합 계열 야당은 당내 영향력과 선거 영향력이 괴리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왔다.

당내 권력이 중시되면서 계파 활동이 의견그룹을 넘어 이익집단으로 정착하고 폐쇄적인 당 운영으로 이어졌다. 당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패권주의가 유연하고 개방적인 경쟁 질서를 파괴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야당의 당권 지상주의가 더욱 심화된 계기는 2007년과 2012년 대선이다.

이제 야권은 말 그대로 절벽 위에 서 있고, 87년의 정치체제는 일당 우위 체제로 퇴행할 기로에 있다. 야권은 내부의 적대를 멈추고 혁신 경쟁을 통해 능력을 갖춘 지도력을 정비해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각 세력 사이에 한편으로는 경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87년 체제 안에는 나름의 경제체제도 작동했다. 한국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박정희 정부의 독재체제와 재벌대기업 위주의 산업체제가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87년 체제가 성립되면서 그 발전모델도 변형되었다. 냉전체제가 이완되고 글로벌화·정보화와 부분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유신체제와 같은 강압적이고 위계제적인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시장과 재벌대기업의 힘은 강화되고 국가의 조정능력은 왜곡·약화되었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가 변형·결합하여 불공정 경제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87년 경제체제다.

그간 87년 경제체제는 두 번의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위기의 결과 보수정부는 붕괴하고 사상 최초로 민주파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0년의 민주정부 집권 기간에도 87년 경제체제의 그늘이 심화되었다. 성장·분배의 왜곡을 막지 못하고 정치적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힘없이 보수파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불공정과 격차 해소에는 무관심했다. 2008년 위기를 수습하면서도 공적 질서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보여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당연히 정권교체가 예상되는 때였다. 그러나 야당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았고, 사실상 야당의 역할을 한 것으로 간주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제 87년 경제체제의 세 번째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헬조선’이나 ‘흙수저’를 말하는 청년들뿐이 아니다. 도처에서 경제현실이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몇 년 안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연해있다. 그리고 현 집권세력이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성장체제를 준비하는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꼼짝을 못하고 있다. 위기가 다가오는데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집권세력이 견제가 되지 않는다. 그 사이 나라 전체가 떠내려갈 수 있다는 걱정이 퍼지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무능과 불안정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어서 변화의 유인이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다음 대선까지의 과정에서 나름의 변신 프로그램을 준비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여론으로부터 계속 고립되고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집권은 물론이고 생존도 어려울 수 있다. 이제 87년의 정치·경제체제는 후퇴하든지 전진하든지 기로에 있다. 당장 악담을 멈추고 스스로 독점과 패권을 버리는 대전환의 결의를 새로이 해야 한다. 특히 야권 정치인들의 창조적 역할이 정말 중요해졌다. 대세를 보는 지혜와 담대한 용기를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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