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그룹을 일컫는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 상임고문(86)이 12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김옥두·이훈평·남궁진·윤철상·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80여명도 함께 당을 떠났다.
당내 양대 축의 하나를 형성했던 호남 세력 이탈로 총선을 앞둔 더민주는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호남발 탈당이 수도권으로 북상할 경우 더민주는 걷잡을 수 없는 ‘탈당 회오리’에 빨려들어갈 공산도 크다.
떠나는 동교동계 좌장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2일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한 후 취재진에게 둘러싸인 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탈당 대열 합류한 동교동계
권 고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0여년 정치인생 처음으로 몸담았던 당을 떠나려고 한다”며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 정권교체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한 정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 지도부의 꽉 막힌 폐쇄된 운영방식과 배타성은 이른바 ‘친노 패권’이란 말로 구겨진 지 오래되었다”며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덧붙였다. 권 고문은 당분간 제3지대에서 신당 세력 통합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더민주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권 고문 탈당에 대해 “아프다”면서 “어쨌든 호남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정말 새롭게 당을 만든다는 각오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지난 5일 권 고문을 만나 탈당을 만류했지만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탈당을 신호탄으로 후속 탈당도 예고돼 있다. 정대철 상임고문 등 전직 의원 40여명은 오는 15일쯤 탈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의원은 다음주 중 탈당키로 했다. 박 의원은 12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장병완·김영록·이윤석·이개호·김승남·박혜자 의원 등도 행동을 함께할 것”이라며 “수도권 의원 2~3명, 전북 의원 2~3명과도 얘기를 나눈 상태”라고 말했다.
■탈당 북상을 막아라
문제는 호남발 탈당 흐름이 수도권으로 북상할 경우다. 이렇게 되면 더민주 지지기반이 크게 흔들리는 것은 물론 야권 지지층은 양분될 공산이 크다. 이날 최원식 의원(인천 계양을)이 탈당했다.
현재로선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외부 인사 영입이 현실적 수습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내에선 이번주 중 조기 선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특히 박영선 의원의 거취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박 의원 거취는 수도권 기류와 조기 선대위 구성의 변수로 인식되고 있다. 박 의원은 “‘정치개혁이 필요하지만 양극단 체제는 싫다’는 중산층 바람에 몸을 실을 것이냐, 아니면 ‘강한 정통 야당에서 정권교체를 이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두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며 탈당과 잔류 사이에서 고심 중임을 밝혔다.
최근 일부 호남 잔류파 의원과 중진의원들은 문 대표에게 ‘박영선 선대위원장’ 체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박 의원과 만나 의사를 타진했지만 즉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인사 선대위원장’ 구상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더민주는 이날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49)를 외부 인사 7호로 영입했다. 양 상무는 광주여상을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해 30년 만에 상무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더민주는 지난달 28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을 영입한 이래 평균 2.2일에 한 명꼴로 ‘새피’ 수혈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