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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이라는 이름의 붕어빵들

입력 2016.01.31 20:54

수정 2016.01.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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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예측을 넘어서는 곳에서 완성된다. 상상의 경계도 허물어질 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선거 드라마’가 탄생하곤 한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탄핵의 역설’이 그랬고, 2008년 18대 총선에선 ‘친박연대’라는 전무후무한 개인 브랜드 정당의 탄생과 선전이 그랬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한때 그들이 경멸하던 ‘빨간 옷을 입은 보수’들이 선거를 극적으로 만들었다.

[아침을 열며] ‘진박’이라는 이름의 붕어빵들

지난 10여년 이들 선거를 관통하는 것은 점점 실상보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지고,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권력자”라고 지목한 ‘개인 브랜드’ 힘이 강력해진다는 점이다. 표를 움직인다는 관점에서 보면 “권력자” 발언은 참 맞다. “유권자 머릿 수를 헤아릴 게 아니라 몸무게를 달아야 한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비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결국 선거에서 표를 모으는 승패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70여일을 남긴 4·13 총선에서 가장 황당한 풍경은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들” 발언이 촉발한 ‘진박(진실한 친박)’일 것이다. 장관도,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새롭게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진박’ 브랜드부터 앞세운다. 대구·경북(TK)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곳엔 진박이란 이름의 빵틀에서 찍어낸 붕어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박근혜 브랜드’가 가진 특수성 때문일 게다. 2008년 총선 당시 대구지역 12개 선거구에서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후보 4명이 당선되는 성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일 게다. ‘선거 여왕’은 ‘브랜드의 여왕’이었다. 이처럼 특정 정치인 팬덤에 기대는 ‘브랜드 선거’는 정치현실의 척박함을 상징한다. 시대정신 같은 가치는 현실정치라는 공장의 기계틀 속에서 변형된 채 진박이라는 기성품으로 찍혀 나온다.

브랜드 선거가 가능한 것은 정치의 소비방식과 무관치 않다. 정치가 숫자로 표시되는 여론조사의 포로가 되면서 소위 ‘정치공학’ 기술은 더 중요해졌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요즘 정치가들은 ‘그때그때’ 국민들 생각에 자신을 맞춘다”(<제로 투 원>)고 개탄한다. 이런 정치에선 가치나 장기계획은 설 자리를 잃는다. 발빠른 조응이 먼저다.

물론 선거가 ‘쌩얼’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선거의 기술은 통상 ‘화장(化粧)’과 ‘분장(扮裝)·변장(變裝)’의 어디쯤 있다. 화장이 표심에 다가가는 ‘단장·치장’ 정도라면, 분장은 정치인이란 배역을 위한 연기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금안’이다. ‘위장’과 동의어인 변장은 결국 표심을 속이는 거짓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진박 브랜드도 예전 같지는 못한 것 같다. 그들의 야심찬 ‘진박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선 “박이 날아든다. 웬갖 잡박이 날아든다”로 시작되는 ‘박(朴) 타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박 타령’의 조롱처럼 ‘박근혜 키즈’들은 고전 중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식 훈계는 아니더라도, 내용물 없는 진박 마케팅이 찜찜한 의심으로 남기 때문일 것이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다’는 농담처럼, 진박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박 붕어’는 빵틀의 가짜 붕어들이라고.

실상 후견인 노릇을 하는 브랜드 소유자부터 ‘진실한 사람’ 논쟁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논란이 뜨겁지만,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3년 9월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의 자진사임은 노인복지연금 재원을 위해 국민연금에 손대라는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속을 떠넘기는 대상이 지금은 지방 교육청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임박한 경제위기에, 일자리 없는 청년들 한숨에 “잠이 안 온다”고 토로하며 진박 붕어들 지지 신호음을 팬덤들에게 발신한다. 각종 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정치권을 다그치기 바쁘다. 이 정도면 선거 기술로 화장이 아니라 ‘변장’에 가깝다. 청년들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절규가 ‘세대의 사다리’를 타고 모두의 가슴을 아프고 떨리게 하는 현실을 정말 보고는 있을까.

결과적으로 진박 브랜드는 상상의 경계를 넘는 드라마 소재는 되지 못하고 있다. 낡고 때묻은 ‘유행가’ 정도로 비친다. 진박 브랜드의 실패가 오히려 ‘반전’에 가깝다.

진박 붕어들을 브랜드 선거 미혹에서 깨어나게 할 몫은 다시 유권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 입에서 ‘이선망(이번 선거는 망했어)’이란 회한이 흘러나오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매서운 한파에도 시급 7000원짜리 알바를 위해 외투 모자의 끈을 ‘질끈’ 조일 어떤 이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될 ‘진짜’들을 선택하는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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