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33)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9일부터 바둑대결(5회전)을 펼칩니다. 아직은 ‘인간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더 힘을 얻고 있지만 ‘기계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챔피언 판후이 2단을 5-0으로 완파한 전력이 있습니다. 물론 이 9단이 판후이 2단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갖고 있지만 알파고 역시 그사이 또 ‘학습’을 했다고 합니다. 지능은 몰라도, 학습속도는 인간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죠.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바둑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19년전에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종목은 바둑과 같은 ‘두뇌스포츠’ 체스, 상대 역시 당시 세계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 대결 소식을 전한 경향신문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1997년 5월13일자 경향신문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미국 뉴욕의 에퀴터블 센터에서 열린 인간 대 컴퓨터의 체스 대결 6회전에서 체스 세계 최강자 게리 카스파로프(당시 34·러시아)가 IBM 슈퍼컴퓨터 ‘딥블루’에게 19수만에 완패한 것입니다. 종합전적 1승3무2패로 딥블루의 판정승. 그동안 ‘단순반복연산기능만 가진’ 컴퓨터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장담해 온 전문가들은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 대국은 ‘냉정한’ 컴퓨터가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보다 승부에서는 한층 유리하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카스파로프는 1회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모든 경기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2회전에서 패한 뒤 충격을 받았고, 그 다음부터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던 5회전에서 무승부에 그쳤고 1승3무1패로 맞선 뒤 붙은 6회전에서는 1시간여만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실 이번 대결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년여전인 1996년 2월 벌어진 대결에서는 카스파로프가 3승2무1패로 이겼습니다. 패배를 당한 ‘딥블루’는 초당 연산속도를 1억회에서 2억회롤 늘리는 등 ‘전투력’을 갑절이나 강화해 재대결에 나섰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카스파로프는 ‘명예회복’을 위해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통해 정식으로 재시합을 요청한 것이죠. 구체적으로 20일동안 격일로 10번을 붙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딥블루의 주인인 IBM은 “훌륭한 체스선수들이 많다”며 거절했습니다.
딥블루를 설계한 IBM의 개발총책임자가 1997년 8월 한국을 찾아 인터뷰도 했네요. 쉬펑슝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당시 38)에 따르면 딥블루는 IBM 과학자들이 8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국 체스챔피언의 조언을 얻었고, 가격은 당시 시세로 200만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쉬 박사는 “카스파로프는 ‘마치 살아있는 에베레스트산’ 같았다”며 “결국 딥블루의 처리속도가 종전보다 100배 이상 빨라져야 하고 종합적인 상황평가 성능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당시 개발과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또 “딥블루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지닌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도 말했습니다.
카스파로프와 딥블루는 1997년 경향신문이 선정한 ‘지구촌 사람과 사람’에도 들어갔습니다. 기사는 카스파로프와 딥블루의 대결이 “PC에 밀려 갈수록 입지를 위협당하던 IBM사가 꾸민 흥미성이벤트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이 이색 대결은 딥블루의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한 IBM 요원들과 카스파로프의 두뇌 싸움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일 인류가 감정과 윤리의식을 결여한 채 기능과 목적만을 추구하는 ‘기계적 인성’에 매몰될 때 냉혈 기계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우려도 던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