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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훈수’ 인류 바둑 3차혁명 시작됐다

‘세기의 대결’ 이후 바둑 어디로 가나…

‘두 뼘 우주’ 바둑판에 한바탕 알파고 충격파가 지나갔다.

애초 대한민국 바둑동네 사람들은 알파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공지능으로는 제법이지만 인간계 고수에게는 상대가 안된다고 여겼다.

‘알파고의 훈수’ 인류 바둑 3차혁명 시작됐다

그 근거 없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주의 원자보다 많다는 경우의 수가 동원됐고 ‘직관’이나 ‘기세’ 같은 단어들도 끌어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알파고는 바둑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정밀한 계산은 ‘컴퓨터’ 이시다 요시오를 능가하고 치열한 전투는 ‘전신’ 조훈현을 뛰어넘었다. 착수대리인 아자황의 무표정으로 대변되던 포커페이스는 ‘돌부처’ 이창호보다 한 수 위였다.

그렇게 인간계를 휩쓸고 간 알파고는 세계 바둑계를 향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현대바둑의 틀을 잡은 우칭위안(吳淸源) 9단

현대바둑의 틀을 잡은 우칭위안(吳淸源) 9단

■ 바둑의 수가 변할까?

현대의 바둑은 크게 두 차례의 발전단계를 거쳤다. 우선 1930년대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우칭위안(吳淸源·1914~2014) 9단과 일본의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1975) 9단이 ‘신포석(新布石)’을 발표하며 현대바둑의 기틀을 잡았다. 이를 바둑의 1차혁명이라고 한다면 2차혁명은 이창호 9단이 이끌었다. 그는 실리에 밝으면서도 두터운 바둑을 선보였다. 반상에서의 균형감각이 뛰어났다. 특히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에서 느껴지듯이 끝내기가 탁월했다.

군웅들이 절대고수 자리를 놓고 숨막히는 승부를 펼치던 반상에 마침내 3차혁명이 일어날 조짐이다. 주인공은 ‘알파고’다. 1990년대 이창호 9단의 전성기 시절, 그의 바둑에는 “이건 뭐야?” “그 수가 돼?” 하며 프로들마저 물음표를 다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보여준 수에도 그런 착점이 적지 않았다. 프로기사들은 그때마다 “한·중·일 프로기사 1300여명 중 누구도 그동안 이런 수를 두지 않았다. 결국 알파고는 데이터에 없는 수를 스스로 생각해서 뒀다고 봐야 한다”(김성룡 9단), “오랫동안 당연시하던 행마나 모양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송태곤 9단), “4000년 바둑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수”(유창혁 9단)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2005년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5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컵을 안긴 이창호 9단(왼쪽)

2005년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5연승으로 한국에 우승컵을 안긴 이창호 9단(왼쪽)

바둑은 늘 새로운 수와 이론을 발견하며 발전해 왔다. 이제 알파고로 인해 새로운 바둑이론이 나오고, 이는 바둑의 3차혁명으로 구전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알파고의 약점은 포석이다’라는 분석이 많았던 것과 달리 알파고가 초·중반에 쉽게 우세를 잡은 점을 고려할 때 포석에서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대해 김찬우 6단은 “포석단계에서의 자유로운 발상은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못 넘는다?

이세돌은 현재 세계 현역 프로기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다. 세계랭킹 1위 커제(柯潔)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커제와 세계 정상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박정환(국내랭킹 1위)한테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 최강자 그룹의 일원인 것이다. 그런 이세돌이 1 대 4로 대패했으니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을 넘어설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올 만하다.

프로기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다수는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이번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알파고가 보여줬듯이 인공지능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다만 이번 승부에서는 이세돌이 그 약점을 찾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당초 “한 판이라도 내주면 지는 것”이라며 승리를 호언장담한 이세돌은 첫 판을 내주자, ‘알파고가 센 것이 아니라 내가 실수해서 진 것’이라고 여전히 상대를 경시했다. 그 때문에 이렇다 할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맥없이 3연패를 당했다. 그러다 뒤늦게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후 두 판은 백중세 속에 1승1패를 기록했다.

결국 ‘방심’ ‘당황’ ‘압박감’ 등 심리적 요소가 결정적 패인이지, 현재 알파고가 인간을 압도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세돌의 분석이다. 많은 프로기사들도 같은 생각이다. 이세돌의 ‘인간계 맞수’ 커제가 “나는 알파고를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앞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은 다양한 형태의 승부를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동안 ‘자존심’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창호 | 이세돌 | 커제 | 박정환

이창호 | 이세돌 | 커제 | 박정환

■ 바둑계 미래는 어둡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면서 ‘앞으로 인간끼리의 대결은 갈수록 흥미를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다시 스폰서 축소로 이어지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2~3차례 대결해 인간이 완패를 당하면 프로바둑계는 점점 작아질 것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우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오히려 이번 대결이 바둑을 세계화하고, 마인드 스포츠로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체스를 예로 든다. 체스는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디퍼블루에 무릎을 꿇으며 바둑보다 먼저 정복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카스파로프는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격분해서 판을 뒤엎었다. 언론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터미네이터가 나타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세계 체스계는 위축되지 않았다. 되레 활기가 넘친다. 딥블루·디퍼블루와의 연이은 승부로 체스에 엄청난 관심이 쏟아져 부흥기를 맞은 결과다. 특히 인공지능과 대결을 벌이면서 인간의 실력도 나아져 노르웨이 출신 챔피언 망누스 칼센 같은 슈퍼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

알파고에 5연패한 판후이 2단의 사례도 바둑의 미래를 보여준다. 그는 참담한 패배 후 잠시 좌절감에 빠졌지만, 정작 실력이 늘어 지난달 열린 유럽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서양에서 바둑이 큰 화제를 모은 것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바둑계에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다.

바둑을 두고 ‘4000년 동양의 정수가 배어든 종목’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한·중·일에 국한된 얘기다. 그것도 ‘높은 분’들의 놀이였지 대중화는 약했다. 한국에서 일반 서민들이 바둑을 가까이한 세월은 고작 70년이다. 이 때문에 한·중·일 바둑3국은 바둑을 세계적 마인드 스포츠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서양에 뿌렸다. 하지만 홍보효과는 미미했다. 그것을 구글이 단박에 해결해 줬다. 바둑 세계화의 초석이 놓인 것이다.

물론 바둑계가 안고 있는 숙제는 여전히 많다. 그중에서도 나라마다 다른 규칙을 하루빨리 정비해 통일시켜야 한다. 대회를 주최하는 나라마다 집계산은 물론 죽고 사는 기준까지 다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스포츠라고 하면서 비스포츠적인 요소가 고쳐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1분 초읽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선수가 화장실을 가면, 관중은 멈춘 시계와 중단된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바둑계가 뜻밖의 대박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 모두가 만년에 행복한 것은 아니다. 변신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대박은 종종 쪽박의 가면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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