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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인가, 바보 정치인인가

입력 2016.03.23 20:36

수정 2016.03.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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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상대를 몰아붙여 톡톡히 재미를 봤다. 경제 실정 책임을 뒤집어쓴 조지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져 연임에 실패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려 애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경제가 매우 위태롭다. 그야말로 위기다”라며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경향의 눈]문제는 경제인가, 바보 정치인인가

국내 경제상황은 녹록지 않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일자리 부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미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빚은 갈수록 늘어난다. 수출은 1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있다.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가계는 소비를 줄이니 경제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평등도 점차 심해진다.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저성장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정부도 한때 경제가 위기라고 했지만 ‘4·13 총선’이 다가오면서 다른 주장을 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일각에서 근거 없는 경제실패론을 제기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앞서 박 대통령이 “경제상황이 당초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 정책효과가 본격화되면 경기 개선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한 낙관론의 연장선상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또 다른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며 오락가락했다. 김종인 대표의 말마따나 ‘대통령의 길 잃은 경제인식’이 국민을 혼란 속에 밀어넣고 있다.

새누리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총선 10대 공약을 보자. 공약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정책이 들어 있어 어느 정도 현실 진단이 가능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1~3번에 전진배치했다. 7~9번에는 소상공인 지원·공정사회(경제민주화)·서민금융 보호 등을 넣어 6개를 경제 관련 공약으로 채웠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경제 관련 공약은 4개였고, 18대(한나라당) 때는 2개였다. 경제 공약은 갈수록 늘어난다. 경제정책에 계속 실패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비중만 따지면 새누리당에는 미치지 못해도 야당의 경제 공약도 다양하다. ‘문제는 경제’라는 인식에 여야가 공감하고 있으니, 총선의 최대 쟁점은 경제가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책선거’는 물 건너간 듯하다. 총선을 불과 20일 남겨둔 이맘때면 각 정당 정책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책은 뒷전에 팽개친 채 여야는 자기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박계 공천 학살’ ‘유승민 고사 작전’ ‘김종인 셀프 공천’ ‘대표 당무 거부’ ‘공천 불만 폭력’ 등 막장 드라마 연출에 여념이 없다. 원내 다수 3당은 ‘봉숭아학당 1~3반’을 방불케 한다.

문제가 경제라는 걸 알아도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야권은 ‘잃어버린 8년’ 운운하며 정부·여당의 경제 실정 약점을 들춰내지만, 사실 경제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가 나빠져도, 약속을 안 지켜도 유권자는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여당에 최대 의석을 안겨줬다. 게다가 지금의 일여다야 구도가 굳어져 이번 총선이 치러진다면 여당은 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헛발질을 일삼아도 반사이익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한 야권 정치인들은 바보이다. 패한 뒤 한국인의 보수 유전자 탓이라는 둥 헛소리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16년 대한민국에 던지는 말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일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을 겨냥한 발언인데, 안 대표 역시 바보짓을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유권자들은 어떤가. 실현 가능성 높은 공약을 많이 제시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당선자의 공약 이행상황을 평가해 다음 선거에 반영하는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하지만 선관위 가이드북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바보 정치인들이 기울어진 선거판을 벌여놨어도 유권자가 현명하다면 바로잡을 희망은 있다. 어느 공약이 실현 가능하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투표에 앞서 기존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망둥이는 낚시에 걸려 올라오다가 떨어져도 이내 미끼에 달려들어 다시 잡히곤 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관성에 따라 투표한다면 망둥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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