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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뱅크 소수당 총선 공약 재활용하라

입력 2016.04.20 21:13

수정 2016.04.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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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은 세계 자동차시장에 기아차의 존재감을 확산시킨 인물이다. 그가 디자인한 K시리즈가 세계 무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7은 아우디, K9은 BMW 일부 디자인과 비슷해 베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슈라이어 총괄사장은 이에 대해 “수입차 같다는 평가는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디자인팀에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고 일축했다.

[경향의 눈]아이디어 뱅크 소수당 총선 공약 재활용하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베끼는 게 필요한 모양이다. 독창적인 화풍으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조차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창조와 혁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새로 발명한 것은 없었고, 모방과 도용을 적절히 섞었다. 잡스와 애플이 잇따라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와 아이콘 또는 윈도를 이용한 GUI, 아이팟, 아이폰 등은 기존 제품이나 시스템을 이용해 만들어낸 새로운 조합이었다. 요즘 화두인 융합을 일찌감치 실행했다.

정부 정책은 대부분 창조성이 떨어진다. 과거 것을 베껴 재탕, 삼탕 하는 수준에 그치는 자기표절이 허다하다. 몇 년 전 정책을 서랍 속에서 꺼내 최근 상황에 맞춰 적당히 손질해 포장한 뒤 새 정책인 양 내놓곤 한다. 조만간 발표할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과 재정개혁안 등도 혁신적인 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일자리 확충, 소득 증대, 성장률 제고 등과 같은 거시적인 정책 목표가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이다. 여전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4·13 총선이 끝났다. 출사표를 낸 24개 정당 가운데 국회에 진출한 정당은 4개뿐이다. 나머지 20개 정당이 내걸었던 공약은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재활용한다면 정부 정책 수립에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국회의원 당선자를 낸 기존 정당의 거대 담론 공약과 달리 소수당에는 현실에 접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약이 많다. 정부가 정책으로 만들 만한 공약이 수두룩하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획득이라지만 이번 총선에 나섰던 일부 소수당은 시민생활 개선을 위하여 국회에 입성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각각 200쪽이 넘는 녹색당과 노동당의 공약은 정책 아이디어 뱅크라고 할 수 있다. 구태의연하지 않고 신선하다. 녹색당은 2015년 4월 공약개발단을 꾸리고 총선 1년 전부터 공약 개발에 열중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살기에 행복한, 건강한 사회를 그렸다고 했다. 기존 정당에서 외면하고 있던 탈핵과 대안에너지, 동물권, 먹거리, 기본소득 등 새로운 의제를 제시했다. 노동당은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경제·생태적 전환의 경로와 정책 수단을 공약에 담았다.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등이 대표 공약이다.

녹색당은 노인·장애인·농어민·청년 등에게 1인당 월 40만원을 지급한 뒤 이를 전 연령대로 확대하는 공약을 냈다. 노동당에도 조건없이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공약이 있었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기본소득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소비기반을 강화해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기본소득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으니, 이제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노동당과 녹색당은 나란히 주 35시간 근무제를 주장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 역시 정부가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길고양이 급식소 확대, 공장식 축산업 동물복지 기준으로 전환, 동물실험 50% 감축, 동물원 동물보호시설로 전환 등 녹색당의 ‘동물권’ 보장 공약은 생활밀착형이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노작, 예술, 체육 등 ‘몸 쓰는’ 교육과정으로 혁신, 강제적 학습노동 금지, 국가 수준 일제고사 및 초등 교육평가 폐지 등을 내세웠다. 선거권이 없어 기존 정당은 내놓지 않는 동물과 학생을 위한 정책이다.

이제 4년 뒤에나 국회의원을 뽑게 됐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없이 전원을 비례대표로 뽑았다면 다양한 정책을 내놓은 여러 소수당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거 전 소수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책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에 원내 진입은 시민이 국회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패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정당들은 총선이 끝나자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서로 물고 뜯느라 정신이 없다. 무능한 정부·여당을 심판해 참패를 안긴 유권자의 힘은 놀랍다. 하지만 진정한 시민 대표를 국회에 얼마나 보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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