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인의 소박한 집, 품 넓은 절집에서 우린 ‘가노을빛’으로 만났네

서영찬·사진 김정근 기자

백기완 선생과 찾은 신동엽 시인 생가

지난 23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충남 부여 신동엽문학관 마당에서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에게 신동엽의 시와 삶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3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충남 부여 신동엽문학관 마당에서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참가자들에게 신동엽의 시와 삶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신동엽 시인을 찾아가는 길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지난 23일 충남 부여 부여읍에 위치한 신동엽 시인 생가 바로 옆 신동엽문학관 앞마당. 마이크를 잡은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83)은 A4 용지 한 장에 프린트된 글들을 카랑카랑하게 읊기 시작했다.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신동엽 시인의 시 ‘진달래 산천’이었다. 백 소장의 낭송은 점차 외침으로 바뀌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백 소장은 시 구절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고난에 처한 민중을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달래 산천’은 민중의 아픔과 분노를 그린 절창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신 시인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동엽 시인(1933~1969)보다 세 살 아래인 백 소장이 그를 처음 만난 건 1959년이다.

“그때 난 운동이라 하긴 뭣하지만, 아무튼 운동을 할 때야. 술 먹다가 조선일보에 실린 시 ‘진달래 산천’을 보게 됐어. 아, 그런데 말이야. 쿵쾅쿵쾅 가슴이 뛰더라고.”

백 소장은 그 길로 무작정 신동엽 시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의 첫인상은 백 소장의 머릿속에 또렷이 남을 만큼 강렬했다.

“눈이 맑아 보였어. 눈에서 샘이 콸콸 쏟아졌지. 진짜 시인처럼 생겼었어.”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핀 부여 반교리 돌담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핀 부여 반교리 돌담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백 소장은 신동엽 시의 힘을 ‘찬샘’이란 단어로 압축했다. 찬샘이란 땅속에서 한없이 솟아나는 샘물로 끊임없이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샘물이라고 설명했다. 찬샘은 억압받는 민초를 일깨우는 힘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백 소장은 신동엽 시인을 진정한 민중시인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70인의 동행’의 첫 행선지 신동엽 시인 생가를 찾은 80명의 답사단은 어느새 신 시인의 시와 삶에 빨려들어갔다. 소설가 김형수씨의 안내로 문학관을 둘러보고 몇몇은 신동엽 시전집을 사기도 했다.

신동엽 시인 생가는 부엌 하나 딸린 방 한 칸이 전부였다. 그가 살던 당시엔 생가 마당에 서면 저멀리 금강이 보였다고 한다. 백 소장은 생가 툇마루에 앉았다. 동행자들은 하나둘씩 백 소장 옆에 번갈아 앉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 소장은 시종 환하게 웃었다. 생가는 원래는 초가집이었지만 지금은 현대식 지붕을 얹는 등 개량됐다. 보존을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백 소장은 과거의 모습이 지워진 것에 대해 못내 씁쓸해 했다.

■반교리 돌담마을서 유홍준을 만나다

일곱 번째 동행 일정은 원래 부여의 신동엽 시인 생가에서 시작해 정림사지, 낙화암·부소산성을 거쳐 공주 마곡사에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정이 촉박해 정림사지를 건너뛰고 반교리 돌담마을로 직행해야 했다. 반교리는 두 가지로 유명하다. 문화재로 등록된 돌담길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사진)의 시골집 ‘휴휴당’이 그것이다.

유 전 청장은 백 소장이 부여 답사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교리에 들러달라며 객원 가이드를 자청했다고 한다. 유 전 청장은 백 소장과의 인연으로 말문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충남 공주 마곡사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참가자들이 충남 공주 마곡사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험난한 시절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면서 백 선생님과 감옥생활도 같이했다”며 “한동안 백 선생님과 다른 일을 했지만 결국 만나는 길은 같더라”고 말했다.

신동엽 시인 생가도 그렇지만 반교리도 유홍준이라는 인물 때문에 찾게 된 것이니 이번 답사는 ‘백기완의 인연과의 동행’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답사 일행 가운데 백 소장과의 인연이 깊은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충렬 학림다방 사장도 답사단에 섞여 있었다.

반교리의 돌담은 키가 작다. 사람 가슴팍 정도 높이다. 유 전 청장에 따르면 반교리의 돌담은 집과 집, 남과 남을 가르고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백 소장의 미학론은 독특하면서도 탁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백 소장은 돌담길을 걸으면서도 특유의 한국적 미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반교리 돌담을 길손에게 ‘어서 오라’는 손짓이라고 풀이했다. 둥그스름한 곡선을 그리며 어디서 끊기고, 어디서 다시 시작하는지 알 수 없게 이어진 돌담길은 길손의 손목을 잡아끈다고 한다. 발길이 가는 대로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어느 집 안마당에 닿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반교리 집들은 문이 없었다. 집들은 하나같이 ‘어서 들어오라’고 부르는 듯했다.

돌담 안팎에서는 채송화, 봉숭아, 나리, 유채, 분꽃을 비롯해 각양각색의 들풀이 수런거리는 듯했다. 40대 이상이 대다수인 답사단은 들뜬 아이처럼 돌담을 걸어 휴휴당으로 향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들풀의 이름을 불러보는 등 재잘거리며 웃음꽃을 피웠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내내 꽉 막혔던 고속도로처럼 대기의 숨통을 조였던 올봄 최악의 미세먼지도 반교리를 떠날 무렵엔 걷혀 있었다. 4월의 하늘은 물걸레로 박박 문지른 마루 같았다.

반교리를 빠져나올 즈음 백 소장은 오른쪽 복숭아뼈 아래가 부어올라 힘겨워했다. 고문 후유증이라고 했다. 고관절 부상으로 가뜩이나 걷기 불편한 상태인지라 일행은 백 소장에게 낙화암·부소산성 코스를 건너뛰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낙화암·부소산성은 원하는 사람들만 들렀고, 일행은 마지막 행선지에서 합류했다.

[명사 70인과의 동행] (7) 시인의 소박한 집, 품 넓은 절집에서 우린 ‘가노을빛’으로 만났네

■공주 마곡사에서 만난 백범의 발자취

마지막 행선지는 공주 마곡사다. 태화산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백제 시대 창건된 사찰로 ‘춘(春)마곡’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봄 풍광이 빼어나다. 마곡사도 백 소장과 인연이 깊다. 마곡사와의 인연 한가운데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있다. 마곡사 대웅전 오른쪽에 백범당이라는 건물이 있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형무소에서 사형수로 복역하다 탈옥한 후 마곡사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때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고 잠시 불문에 들기도 했다. 당시 김구 선생이 기거하던 곳이 백범당이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마곡사를 찾아 향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백범당 옆에 아름드리 서있다.

지금의 백범당은 완전히 새로 개축돼 과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백 소장은 그 점이 무척 안타깝다고 했다.

백 소장은 백범당 앞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있다가 도망 나와 황해도 우리집으로 왔어. 우리집에서 당장 팔아먹을 수 있는 거라곤 조그만 소 한마리뿐이었는데 그 소를 때려잡아서 백범 할아버지에게 대접을 했대. 그런데 보름을 아침점심저녁으로 소고기만 먹는데도 물린다는 말을 안 하고 먹었다는 거야.”

백 소장은 이 일화를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듣고 자랐다고 했다. 백범 일화는 백 소장에게 신화였다고 한다. 김구 선생과 백 소장 간 인연의 시작인 셈이다. 어린 백기완은 백범 일화를 가슴에 무수히 되새김질하며 컸을 것이다.

인연은 이어졌다. 백 소장은 해방 후 서울로 내려와 궁핍한 생활을 할 때 백범을 처음 만나 포옹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마곡사는 김구 선생과 맺은 인연을 현재형으로 이어주는 장소이다.

백 소장도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고초를 받던 시절 마곡사를 찾았다. 힘들 때면 종종 마곡사를 찾아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에게 그랬듯이 마곡사는 백 소장에게도 위로와 재충전의 공간 같은 곳으로 비쳤다.

마곡사의 백범당은 김구 선생을 향한 백 소장의 존경과 흠모가 밴 곳이라 해도 될 것이다. 백 소장은 통일과 민족에 대한 신념을 간단히 언급하며 마곡사에 얽힌 인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힘찬 목소리가 조금 쉬는 듯하더니 눈가에 물기가 살짝 내비쳤다.

백 소장과의 동행은 신동엽 시인에서 시작해 김구 선생으로 끝났다. 민중에서 출발해 민족으로 향한 여정이었다. 개인사업을 한다는 이재구씨(55)는 이날 답사에 대해 “민중이니 향토니 이런 것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울림이 큰 소풍이었다”고 말했다. 백 소장에게 경향신문과의 동행 혹은 인연에 관한 소회를 묻자 종이 위에 수성펜으로 문장 하나를 썼다. “우리는 가노을빛으로 만났네.” 가노을빛이란 들녘에서 문득 마주친 막 생기기 시작한 노을빛이라고 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설렘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 동행 일정

▶30일 술평론가 허시명과 문경새재 ▶5월7~8일 법인 스님과 땅끝마을 ▶14일 박석무 이사장과 다산유적지 ▶21일 박태순 작가와 퇴계의 예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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