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파크도서 북DB 제공·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시시때때로 놀 궁리를 하는 여자와 노는 것을 죄악으로 느끼는 남자. 내가 편하면 그뿐인 여자와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남자. 자신의 선택을 믿는 여자와 타고난 운명을 믿는 남자. 정진영·김의찬 부부는 이처럼 서로 지극히 달랐지만 ’웃음’이라는 무기 하나로 지난 14년의 결혼생활을 견고하게 지켜왔다.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를 펴낸 이들 부부를 찾아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현장에는 이번 책에 삽화를 그린 딸 김유빈양도 함께 자리했다.
Q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진영 : 책 앞부분에 실린 8개의 에피소드는 2007년에 잡지 ’엘르’에 연재했던 칼럼이에요. 결혼한 지 5년 정도 됐을 무렵이었는데, 아는 기자 분이 서로 다른 남녀의 시선으로 재미있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씩 글을 연재했는데 반응이 좋아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드라마를 시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재를 중단하게 됐죠.
김의찬 : 시트콤이나 드라마는 배우의 연기나 연출이 더해져서 시청자를 만나게 되잖아요. 대본을 쓰면서 배우도 신경 써야 하고 방송국의 이해관계를 따져야 하다 보니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많아요. 그런 작업이 굉장히 힘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가 쓴 날것의 글로 독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게 됐어요.
Q 책을 쓰면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진영 : 제게 드라마를 배우는 제자 중에서 62세인 여성분이 계세요. 그분이 제 책을 읽고 난 뒤에 살면서 처음으로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실제로 결혼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공감과 웃음을 주고 싶었어요.
Q 책을 보면 서로의 이야기가 거의 ’폭로’ 수준인데요. 사생활 공개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정진영 : 책을 내고 난 뒤에 주변에서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나중에 이혼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죠.(웃음) 아마도 사생활 공개를 두려워했다면 이 책을 못 썼을 거예요. 저희는 진정성이야말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의찬 : 책을 보면 저희가 처음 만난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 끝을 향해 읽어 가면서는 찡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투닥거리고 싸운 순간들을 잘 극복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고요. 이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모였다는 것 자체가 서로 열심히 웃으면서 살아왔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은 저희 부부에게 있어 일종의 선물 같은 존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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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책을 통해, 8년의 연애생활 동안 한 번도 안 싸우셨다고 했어요. 정말 사실인가요?
정진영 : 사실 그때는 저랑 똑같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한 후에는 속았다고 외쳤지만요.(웃음) 연애를 하는 내내 일일 시트콤을 하느라 98%의 시간은 일에 쓰고, 남는 2%의 시간 동안만 데이트를 했어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연애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늘 팀으로 모여 있었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거기서 투닥거릴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남는 시간에 그저 식당에 가서 밥만 같이 먹어도 쉬고 있다는 그 자체로 행복했던걸요.
김의찬 : 저희 둘 사이에 분명 차이점은 있었어요. 하지만 먼지 하나를 보고 웃어도 서로 웃음을 느끼는 지점이 정말 똑같았죠. 시트콤을 만드는 작업 자체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항상 웃음을 연구하다 보니 일상에서 웃긴 지점을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둘 다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서 데이트를 할 때에도 웃긴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재미있는 것을 찾으러 다니느라 바빴죠.
Q 그럼 결혼한 뒤에는 어떠셨나요.
정진영 : 결혼한 이후에는 성격이 달라서 부딪치기보다 서로 작품을 하면서 많이 싸웠어요. 일을 할 때만큼은 서로 예민해져서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상대를 설득시키려다 보니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일 때가 많았죠. 이렇게 일을 하는 과정이 워낙 힘들다 보니 그 과정에서 빠져나오면 일상에서는 서로 부드러워졌어요.
김의찬 : 싸우다 보니 요령이 좀 생기더라고요.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면서 부딪쳤을 때를 돌이켜보면 둘 다 최선이 아니었을 때가 많았죠. 이제는 그런 순간이 오면 일을 딱 접고 쉬면서 영화를 보러 가는 식으로 넘겨요.
Q 부부 간에 잘 싸우는 요령이나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정진영 : 가능하면 서로 안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싸울 때는 존댓말을 사용하세요’, ’싸우더라도 손을 잡으세요’라는 조언들이 있잖아요. 이렇게 싸운다고 해도 결국 서로에게 상처가 남게 되지 않나요? 다들 화가 나면 폭력적인 언행을 사용하니까요. 서로 어느 부분에서 싸우게 된다는 걸 빨리 찾아낸 다음 가능한 싸움을 안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김의찬 : 싸울 때가 되면 여자들은 꼭 다 끝났던 옛날 일을 다시금 꺼내 들어요. 그런 점에서 확실히 부부싸움은 남자에게 불리한 게임이에요.(웃음) 차라리 그 순간 자리를 떠나서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식으로 마음을 추스르는 편이 나은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시원한 콜라 한잔 들이켜고 화장실 청소를 하죠.(웃음)
정진영 :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는 갈등이 생겨도 서로를 웃기면서 넘어가려고 하죠. 아무리 싸운다고 해도 결국 웃으면서 마무리를 하다 보니 심각한 갈등이나 싸움으로 치닫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만약 상대를 웃길 자신이 없으면 코미디 프로나 웃긴 영화라도 같이 보면서 서로 웃는 연습을 해보세요.
김의찬 : 우리 모두가 개그맨이 될 수 없지만 개구쟁이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집안에 개구쟁이 하나만 있어도 즐거워지고 화날 일이 별로 없거든요.
Q 데뷔 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지만 2010년 이후 지금까지 방송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김의찬 : 저희 어깨에 들어가 있던 뽕도 다 빼놓고 날개도 꺾이던 시기였죠. 인생을 길게 놓고 봤을 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순간이었어요.
정진영 :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일이 계속해서 잘됐으면 딸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을 거예요. 시간이 생긴 덕분에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면서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죠. 그래서인지 딸과의 사이에 견고한 믿음이 생겨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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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4년차 부부로서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을 귀띔해주신다면요.
김의찬 : 어느 부부에게나 틈은 있어요. 저희 부부에게는 서로의 틈을 합칠 수 있는 접착제가 ’웃음’이거든요. 그런데 자식이나 돈을 접착제로 사용하는 부부들이 많아요. 힘들지만 자식을 위해서 살고, 상대가 돈을 벌어오니까 참는 식으로요. 만약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떠나거나 경제적인 부분이 어려워지면 서로의 관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자식과 돈 이외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칠 수 있는 접착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부부가 지금까지 이렇게 웃으면서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정진영 : 시트콤 작가가 된 계기는 단순했어요. 웃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최고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순풍산부인과’를 만들 때 시청자들의 후기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당시 IMF가 터졌을 때였는데 국민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어요. 월세 문제로 싸우다가 저희 방송을 보고 집주인이 웃는 바람에 월세가 동결됐다는 이야기들이 올라왔어요. ’그저 바라보다가’를 했을 때에는 자살을 세 번이나 시도했던 분이 다시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려주시기도 했고요. 그저 즐겁게 돈을 벌고자 시작했던 일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결국 삶에서 웃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죠.
Q 근황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전해주신다면요.
김의찬 : 현재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아마도 오는 5월 중에 <의찬이 엄마>라는 책으로 다시 한번 독자 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어서 딸 유빈이의 그림책도 나올 예정이고요. 저희의 이번 책에 등장한 ’롯데월드 추격사건’의 주인공 처남의 책도 나올 예정이에요. 처남은 아내의 사촌 남동생인데 그동안 저에게 당한 이야기를 모으니 20개는 된다더군요.(웃음) 아내의 사촌 여동생은 빈티지 그릇에 대한 글을 엮어 9월쯤 출간하게 됐고요.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의 2탄은 저희 부부가 60대 정도 됐을 때 나올 것 같아요. 그래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모일 테니까요.(웃음)
정진영 : 그동안 드라마가 잘 안 풀리는 바람에 준비해놓았던 작품들이 많아요. 앞으로 한 개씩 차근차근 풀어가면서 폭넓은 시청자와 만나고 싶고요. 여건이 마련된다면 현장에 나가서 결혼생활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요. 저희 부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방송이든 책이든 모바일이든 극장이든 강연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풀어낼 계획이에요. 참, 김 작가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연애상담을 해주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답니다.(웃음)
김의찬 : 어제만 해도 제자 둘에게 연애상담을 해줬죠.(웃음)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문화센터를 찾아가 역학을 공부했어요. 예전부터 사주나 주역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뭐 대단한 정도는 아니고 그저 밖에 나가서 아는 척을 하는 정도랄까요.(웃음) 요즘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 삼아 부적을 써주고 있어요. 노란 종이에 빨갛게 써주는 그런 부적은 아니고요. 그저 먹을 갈아서 붓글씨로 정성껏 써주는 거죠. 이를테면 누군가 회사 일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면 ’승진임박’이라고 써주는 식으로요. 실제로 어떤 분은 제가 써준 부적으로 회사생활을 버티고 결국 승진까지 하셨더라고요.
※이 기사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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