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기업 자의적 작성·은폐…부실 터져도 규모 가늠 어려워
독립성 잃은 회계법인 “자유수임제 아닌 금융당국이 지정해 줘야”
최근 조선·해양업계의 부실화가 심각해지면서 회계 자료와 감사의 불투명성이 기업 구조조정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경영 내용이 정확하게 담겨야 할 재무제표 등이 기업 자의적으로 작성되면서 부실 징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선제적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부실이 드러나도 회생을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어지면서 구조조정의 밑그림도 주먹구구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회계법인들이 기업 회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고 ‘하청용역’ 정도에 그치면서 부실을 키우고 있다.
16일 회계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조선업 부실의 핵심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영업손실 수조원어치를 지난해 장부에서 한꺼번에 터는 등 몇년간 지속된 경영 악화 상황이 재무제표를 통해 미리 감지되지 못했다.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이 재무제표를 수정하면서 2013~2014년 연속으로 매년 4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던 것이 3년 연속 5조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돌변했다.
대우조선의 부실이 은폐된 1차 책임은 적시에 경영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대우조선에 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회계 감사를 맡아 ‘재무제표가 매년 제대로 작성됐다’며 적정 의견을 내놓은 안진회계법인도 책임이 크다.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각 수사와 감리를 진행 중이다.
회계사들은 기업의 주먹구구식 회계가 허용되고, 회계법인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부실회계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재무제표 감사 도중 분식회계 의혹을 발견해 자료를 요청하거나 실사를 요구해도 기업이 거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기업이 감사인을 선임하고 수임료를 주는 현재의 ‘자유수임제’하에서는 회계법인이 ‘을’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적정’ 의견을 내면 재계약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계법인이 감사 회사에 대해 ‘적정’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실의 조사를 보면 2014년 한해 동안 삼정·삼일·안진·한영 등 ‘빅4’ 회계법인이 제출한 감사의견 527건 중 단 1건을 제외한 526건이 ‘적정’ 의견이었다.
이 대표는 “금융당국 등이 회계법인을 지정해주는 지정감사제 도입으로 회계법인의 독립적 감사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식회계를 한 회사의 임원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 이 내용이 포함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률(외감법)’ 개정안은 2014년 발의됐으나 입법작업에 진척이 없다. 더구나 지난 3월 정부 규제개혁위원회는 분식회계 등을 저지르고 해임 또는 면직된 기업 임원에 대해 2년 동안 상장사 취업을 제한하는 내용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수정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의 늑장대응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우조선 문제는 지난해 초부터 제기됐으나 금감원은 지난해 말에서야 감리를 진행했다. 김경률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회계사)은 “분식회계 여부가 빨리 드러나야 기업 회생과 구조조정 문제가 결정될 수 있는데, 당국이 감리 진행과 결과 공개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