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18일 공용화장실 ‘여성혐오’ 살인 논란과 관련해 “정신이상자(범인)가 한 얘기를 일일이 해서 뭐하시게요”라고 밝혔다.
서초서 관계자는 이날 오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김씨가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원인이 결국은 정신이상으로 그렇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전날 김모씨(34)가 서울 서초구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후 이 사건은 ‘여성혐오 살인’으로 불리며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정신병력에 따른 살인’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이날 저녁 보도자료를 내고 피의자 김씨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 정신분열증 등으로 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건강보험공단에서 회신받은 진료내역과 비교해 본 결과 (김씨는) 2008년 여름부터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이래 2008년 수원 모 병원에서 1개월, 2011년 부천 모 병원에서 6개월, 2013년 조치원 모 병원에서 6개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 모 병원 6개월 등 4번 입원치료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전날 저녁 보도자료를 내고 “피의자는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또는 성폭행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 계속 조사해 정확한 범행동기를 규명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18일 ‘여성혐오 살인’으로 희생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출구를 가득 덮고 있다. 이혜리 기자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7일 서초구 한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여성 ㄱ씨(23)를 여러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범행을 위해 한시간 가량 피해자를 물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가 시간을 두고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집에서 흉기를 준비해갔다는 점,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는 진술 등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상에선 “우발적인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만을 노린 ‘여성혐오 살인’이라는 주장이 퍼져나갔다.
이는 18일 오전부터 오프라인의 ‘포스트잇 추모’로 번져갔다. 18일 오후 현재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는 포스트잇 수백개가 붙어 외벽 거의 전부를 가렸고, 근조 화환과 추모 촛불도 놓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이날 오후 7시쯤 추모 현장을 방문해 트위터에 “슬프고 미안하다”고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추모 트윗. 트위터 캡쳐
추모에 동참한 시민들은 “묻지마 살인의 타깃은 왜 항상 약자인 여성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동참해 주세요. 오늘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내일은 운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혐(여성혐오)은 이제 여성의 생존 문제입니다” “그놈이 다른 데서 일했다면 내가 죽었을 수도 있겠지” “언제까지 남자 개인의 문제로 보실 건가요”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18일 ‘여성혐오 살인’으로 희생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오후쯤 근조 화환이 강남역 10번출구 근처에 놓였다. 이혜리 기자
이날 오전 6시쯤만 해도 포스트잇이 네다섯개에 불과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식이 확산되고 점심부터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면서 점점 늘어나 외벽을 가득 채웠다. 두 손을 몸 앞으로 모으고 숙연한 자세로 포스트잇을 읽거나 한숨을 쉬고 눈시울을 붉히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이번 사건이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여성혐오가 드러난 범죄라고 지적했다. 경기 수원에서 직접 찾아와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라는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붙인 여성 ㄱ씨(27)는 “여성을 겨냥한 범죄가 만연한데 계속 ‘묻지마 살인’으로 포장된다”며 “정신병자가 ‘묻지마 살인’을 한 게 아니라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ㄴ씨(25)는 “사건을 접했을 때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었다”며 “희생자는 항상 노약자, 여자, 어린아이가 되는 한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했다. ㄷ씨(25)는 “그동안 여성 인권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이 나왔고 그에 대한 분노가 쌓여 있다보니 이 사건까지 터졌다고 본다”며 “여성 인권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18일 ‘여성혐오 살인’으로 희생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오후 촛불이 추모 꽃다발, 포스트잇과 함께 놓여 있다. 이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