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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로 받아들인 여성들이 추모 열기 주도..."왜 여성을 향해서만 분노를 표출하느냐 묻는 것"

입력 2016.05.19 16:15

수정 2016.05.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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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아무리 생각해도 왜 언니가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적혀있다. 이혜리 기자

19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아무리 생각해도 왜 언니가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적혀있다. 이혜리 기자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한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된 이후, 사건 현장 주변인 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포스트잇’ 추모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19일 현재 포스트잇 수백개가 10번 출구 외벽을 덮었으며 근조 화환과 꽃다발도 놓였다.

온라인에서도 추모 열기가 커지고 있다. 지난 18일 페이스북에는 ‘강남역 10번 출구’란 페이지가 생겼다. 해당 페이지에는 추모 현장 사진, 피해자를 애도하는 글 등이 올라온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이 페이지를 구독하는 사람은 2300명이 넘는다.

온라인 상의 애도와 분노를 집회로 연결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강남역 추모 집회’ 카페가 개설돼, 21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집회를 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카페에는 이날 오후 4시 현재 750명 이상이 가입했으며, 110명 이상이 집회 적극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와는 또다른 19일 저녁 추모 모임도 예정돼 있다.

지난 18일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 놓인 추모 꽃다발과 촛불. 이혜리 기자

지난 18일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 놓인 추모 꽃다발과 촛불. 이혜리 기자

19일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혜리 기자

19일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혜리 기자

온·오프라인을 넘어 살인 피해자 추모 열기가 번진 건 이례적이다. 그간에도 여성만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는 종종 보도됐다. 최근에는 지난 2일 대전의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20대 여성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친 ㄱ군(16)이 검거됐다. 그는 “그냥 화가 나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17일 광주에서는 지인과 등산 중이던 여성 이모씨(63)가 김모씨(49)가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김씨는 사건 당일 오전부터 흉기를 들고 산 속을 배회하다가 이씨를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비롯해 여성을 노린 강력범죄가 수없이 발생했지만 지금처럼의 추모 열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번 추모 열기는 해당 사건이 단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여성’ 살인이라는 관점이 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번 사건을 여성들이 자기의 위험으로 감지하고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추모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들이 ‘어릴 때 시비걸었던 아저씨’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달려든 남자’ 등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건, 결국 여자를 표적으로 하는 범죄에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왜 범인은 여성을 향해서만 분노를 표출하느냐는 공분”이라는 해석이다.

19일 한 추모객이 남기고 간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어있다. 이 추모객은 “저는 운이 좋아 살아있네요. 살아있음을 운이 좋다고 표현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도리어 무섭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혜리 기자

19일 한 추모객이 남기고 간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어있다. 이 추모객은 “저는 운이 좋아 살아있네요. 살아있음을 운이 좋다고 표현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도리어 무섭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혜리 기자

이와 관련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2014)’에 따르면 가해자 성별은 남성이 97.9%로 압도적이었다. 이들의 범행 동기는 ‘환각, 망상(26,5%)’에 이어 ‘재미, 자기과시, 이유없음(25%)’ ‘분풀이, 스트레스 해소(23.5%)’ 순이었다. 이들의 범행 당시 기분은 ‘분노(72.9%)’가 다수였다. 범행 장소는 노상(48.9%), 실내 및 주택단지내(38.3%) 등이었다. 반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경우 여성이 압도적이다. 2013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대검찰청 자료를 활용해 강력범죄 피해자의 성별 중 여성 비율이 2002년 75.6%에서 2011년 83.8%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19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있다. 이혜리 기자

19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있다. 이혜리 기자

이처럼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성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현실은 여성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안전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통계로 보는 한국 여성의 안전(2013)’ 조사 중 ‘범죄위협에 대한 인식’ 항목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불안함’을 10.6%포인트 높게 느꼈다. 2005년의 경우 이 격차는 20.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야간보행에 대한 안전도 인식’ 역시 2012년 여성의 56.3%는 ‘두려운 곳 있음’이라 답했으나 남성은 30.4%만이 같은 응답을 했다.

일각에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저자 리베카 솔닛의 말이 인용되고 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이 사건을 애도하는 여성들은 ‘왜 남성은 여성 앞에서만 분노를 하느냐’고 묻고 있다. 일부 남성들이 이 사건을 이해할 때 젠더라는 변수를 제외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의 권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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