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머가 있고 유연하기도 했다. 외교부-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 합동 만찬에서 그의 유머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한번은 반 장관이 다른 장관들에게 외교관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아느냐고 퀴즈를 냈다. 외교관이 아닌 우리는 알 리 없었다. 반 장관이 ‘기름 바른 장어’라고 해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외교관은 ‘요리 빼고 저리 빼며 잘 빠져나가는’ 처신을 한다는 뜻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 중)
별명이 여럿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표 별명은 ‘기름장어’이다. 능숙한 외교관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던 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의 별명이 됐다. 까다로운 질문이나 복잡한 상황을 매끄럽게 잘 피해간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줬다. 외신들도 기름장어를 그의 별명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이 농담에서 언급했던 기름 바른 장어와 기름장어는 다르다. 기름장어는 미꾸라지의 일종인 토종 물고기 왕종개의 방언이다. 비판적인 외국 언론은 그의 업무 능력과 스타일을 두고 ‘투명인간(invisible man)’ ‘무능력한 관찰자(powerless observer)’ ‘어디에도 없는 사람(nowhere man)’ 등으로 묘사하곤 한다.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에 반 총장이 또 직면했다. 유엔이 1946년 제1차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안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에 사실상 ‘퇴직 후 취업 제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약정은 “회원국은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되며, 사무총장도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명시했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은 내년 대선의 유력 주자로 거론된다. 하지만 약정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유엔 결의안 위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반 총장은 수 년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반 총장이 오늘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1년 만에 방한한다. 언론은 유엔 결의안 조항을 알고 있었는지, 대선 출마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묻겠지만, 반 총장은 늘 그랬듯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것이다. 만일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런 성품과 평판이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