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23)는 둘째가면 서러워할 ‘야구 마니아’다. 3개월 간 야구기록원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래서 야구상식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단 운영에 관해서도 잘 안다. 그는 고교시절 야구장에서 티켓 확인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구단 운영팀에는 김씨와 이름이 같은 직원이 있었다. 성인이 되서도 그때 기억은 또렷했다. 그는 동명이인인 구단 직원을 사칭하는 것에서부터 범행을 시작했다.
김씨는 구인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포츠 관람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올렸다. 그는 지원자들에게 “구단에서 일하고, KBO(한국야구위원회)와 계약을 맺고 경기기록을 분석하는 회사 대표로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또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대부분 취업 준비생인 지원자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순히 관람만 하면 된다”는 말에 현혹됐다.
아르바이트에 나선 여성들은 실제로 야구, 배구 등 스포츠 경기를 관람했다. 김씨는 여성들에게 한 경기당 10만원을 지급해 마치 정상적인 아르바이트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수차례 경기를 관람한 뒤 돈을 받았고, 김씨를 완전히 신뢰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때부터 김씨는 본격적인 범행을 시작했다. 그는 다양한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돈을 가로챘다.
가장 기본적인 수법은 선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김씨는 “아르바이트 비용이 법인이 아닌 개인 명의로 잘못 송금되었다”며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받은 뒤 “선금을 보내면 향후 알바비까지 일괄 정산해서 한꺼번에 주겠다”고 속였다. 피해자들은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기 위해 김씨에게 선금을 보냈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계좌 잔고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보내고 잔액을 전부 송금해주면 송금액의 70%를 더해 돌려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갔다. 김씨는 이들에게 “협회 지원금에서 빼주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지인 명의의 계좌 잔고 사진까지 요구했다. 며칠 뒤 김씨는 “알바비를 추가 지원하려고 시도한 것이 협회 측에 적발됐다”며 “지인까지 고소당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돈을 요구했고, 겁에 질린 피해자들은 김씨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김씨는 지인들까지 속였다. 그는 교도소 동기, 학교 동창 등에게 야구 관련 사업 문제로 인한 형사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빌렸다. 이후 피해자들에게 조작한 송금내역 사진을 전송해 돈을 갚은 것처럼 행세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올 2월부터 3개월간 일명 ‘스포츠 경기 관람 아르바이트’를 빙자해 31명에게 192회에 걸쳐 총 1억700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김씨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김씨는 과거 유사한 범죄를 저질러 복역한 후 올 2월초 출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첫번째 범행 성공 후에도 피해자와 연락을 끊지 않고 수차례 범행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인들에게 야구 사업을 하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고 도박을 해서 돈이 필요했다”며 “전에 비슷한 수법을 써보니 사람들이 쉽게 속아서 출소 후에도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프로야구 구단과 KBO 관계자를 상대로 확인한 결과, ‘경기장 관람객 알바’라는 형태의 아르바이트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