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중국 애국주의

안호기 논설위원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사상인 애국주의는 보통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발현된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애국자가 나온 것은 그런 맥락이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겠다는 일념이 애국자를 양산했다. 시민이 보다 행복한 삶을 갈구할 때도 애국주의가 등장한다. 1987년 민주화는 직선제 쟁취와 호헌철폐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수많은 ‘애국학생’과 ‘애국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애국주의도 있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시민을 결집시키려 한다. 애국을 핑계로 정권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했던 과거 군사정권도 그릇된 애국주의를 주입시켰다.

중국에서 최근 애국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남중국해 중재판결 이후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는 미국과의 전쟁 불사, 필리핀산 제품 불매 등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하철에서는 한 남성이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는 이유로 매국노 욕설을 들었다. 한국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윤아의 인스타그램에 한 팬은 “중국에서 계속 돈을 벌고 싶으면 빨리 입장을 표명하라”는 댓글을 달았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국 배치에 대해서도 일부 매체들은 성주군 제재, 한국 기업 보복 등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간부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의 면담 약속을 불과 몇 시간 전에 취소하기도 했다. 사드 관련 기사에는 한국 상품 불매 및 관광 중단을 주장하는 누리꾼 댓글이 늘어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이후 중국은 ‘중궈멍(中國夢·중국의 꿈)’이라는 구호로 부국강병을 꾀하고 있다. 미국에 뒤지지 않는 강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고도성장 이후 경제가 침체하면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교육 방식을 혁신해 청소년에게 애국주의를 고취할 것을 지시했다. 남중국해 판결과 사드 배치는 국익과 정권에 모두 위기를 초래할 만한 사안이다. 중국 시민이 애국주의를 발현할 기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애국이지만 다른 나라에는 공격적 행동이 될 수 있다. 평화와 협력을 실천해야 할 세계시민의 역할을 어느 한쪽에만 요구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신세가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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