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약 35조원을 들여 영국 ARM홀딩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내년 8월 60세 생일에 은퇴키로 했던 계획을 번복하고 소프트뱅크 역사상 최대 규모 빅딜을 성사시켰다. 그는 “사물인터넷(IoT)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이번 인수는 사물인터넷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ARM은 모바일 기기용 중앙처리장치(CPU) 설계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영국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영국 기업이 잇따라 해외에 팔리고 있다. 영국 극장체인 오데온&UCI시네마그룹은 미국 AMC엔터테인먼트에, 영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파운드랜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유통기업에 넘어가게 됐다. 앞서 미국 언론재벌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프는 영국 유명 스포츠 사이트 ‘토크스포츠’를 보유한 와이어리스그룹을 인수하기로 했다.
영국 시민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은 세계화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이민자가 몰려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일부 자본가들이 이익을 독점한다고 여겼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뒤 영국은 고립이 심해져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오히려 해외 투자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를 들뜨게 하고 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을 떠난 뒤에도 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투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투자 러시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10% 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기업으로서는 영국 기업을 10% 이상 싸게 살 수 있는 ‘바겐세일’ 기회를 맞은 셈이다. 실제 이달 초 엔화 대비 파운드화 가치가 20% 넘게 폭락하자 일본 은행들이 대거 파운드화 매집에 나서기도 했다. 게다가 해외 기업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린 뒤 빠져나가는 이른바 ‘먹튀’ 행태를 보일 우려도 있다. 최악의 경우 고용 불안과 국부·기술 유출만 초래할 수도 있다. 브렉시트가 이민자는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자본의 세계화까지 막기는 불가능하다. 세계화에 저항했던 영국 시민들이 또 다른 세계화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