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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 열풍에 각국 보안 비상, 사우디는 금지령...천태만상

입력 2016.07.22 21:04

수정 2016.07.2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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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거리로 사람들이 달려나온다. 내 집 앞마당부터 도심 광장까지, 포켓몬이 등장하는 모든 장소는 ‘포켓몬 트레이너’들의 놀이터가 됐다.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 열풍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러나 ‘포켓몬이 나오는 곳 어디든 간다’는 게임의 규칙은 이내 현실의 규칙과 충돌한다. 현실에는 자유로운 출입이 제한되는 수많은 사적·공적 공간들이 있다. 증강현실 속 가상과 현실의 불안한 공존이 세계 곳곳에서 기현상들을 만들고 있다.

긍정적인 평가는 많다. 활동적인 포켓몬 트레이너들은 매일 혹은 매주 몇km에서 길게는 10여km를 걸으며 운동을 한다. 영국 가디언은 게임에 몰입했을 때 나타나는 현실도피 효과가 정신건강에도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포켓몬을 찾아다니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도 많다. 지난 14일 미국에서는 포켓몬 사냥에 열중하던 남성 2명이 절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영국에서는 희귀 포켓몬을 찾으러 간 10대 소년들이 지하 30미터 동굴에 갇혔다가 갇혔다가 극적으로 구출됐다.

포켓몬을 잡다가 도둑을 잡은 경우도 있다. 영국 돈캐스터에서 한밤 중에 포켓몬을 잡으며 돌아다니던 이들이 절도 현장을 발견, 경찰에 신고해 범인 체포를 도왔다. 반면 미국에서는 포켓몬 사냥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탑’을 설치한 후 이용자들을 유인해 강도짓을 한 사례도 있었다. 과테말라의 치키물라에서는 21일(현지시간) 이 게임을 하던 10대 청소년이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도 지난 15일 10대 소년 2명이 새벽에 차를 세워두고 게임을 하다가 강도로 오인받아 총격을 입었다. 보스니아 지뢰제거 단체인 ‘포사비나 베즈 미나’는 페이스북에 “지뢰 위험지역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실었다. 1990년대 내전 당시 심어진 지뢰가 아직도 일부 지역에 남아 있는데, 그런 곳에 게임 사용자들이 들어가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의 한 아파트 단지에 한밤 중 세 개의 포켓스탑이 설치돼 1000여명의 포켓몬고 이용자들이 몰려들었다. | Pokemon Go Sydney 페이스북

호주 시드니의 한 아파트 단지에 한밤 중 세 개의 포켓스탑이 설치돼 1000여명의 포켓몬고 이용자들이 몰려들었다. | Pokemon Go Sydney 페이스북

가장 큰 논란거리는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몰려들면서 생기는 혼란이다. 호주 시드니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한밤 중에 세 개의 포켓스탑이 설치돼 1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에 시달렸다. 사유지 침해 논란도 발생한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건물 주인은 정원 앞에 “세입자들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니 포켓몬을 잡으러 들어오지 마라”는 문구를 크게 써붙였다.

캐나다 토론토의 한 어린이 병원은 포켓몬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캐나다의 한 여성은 2004년 숨진 자신의 아기를 기리는 교회 안 추모비가 ‘포켓스탑’이 되자 분노했다. 그는 “추모비는 조용히 죽은 아들을 기억하는 곳”이라며 “사람들이 추모비 앞에서 게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캐나다 CBC에 말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박물관은 대학살 희생자 추모장소가 게임장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게임 제작사에 시정을 요구, 박물관을 제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추모장소가 게임장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면서 포켓몬고 제작사에 시정을 요구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홈페이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추모장소가 게임장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면서 포켓몬고 제작사에 시정을 요구했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홈페이지

몇몇 나라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포켓몬 고를 경계한다. 출입이 통제되는 보안구역까지 포켓몬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군사 기지에 들어온 프랑스인 포켓몬 트레이너가 일시 구금됐다. 러시아 정부는 크렘린 궁 주변에서 이 게임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국경 지역에서 포켓몬 고를 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가 포켓몬 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정부 기밀과 군사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스마트폰 실시간 카메라를 활용하는 게임 특성을 악용해 기밀구역을 찍거나 비밀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쿠웨이트 정부는 공무상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다며 업무 중 공무원들의 포켓몬 고 이용을 금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게임을 ‘국가적 안보 위협’으로까지 규정했다.

포켓몬고 게임 화면

포켓몬고 게임 화면

포켓몬 고는 일본 닌텐도와 미국 게임회사 나이앤틱이 공동 개발했다. 이 게임이 미국 정보기관의 공작 수단이라는 음모론까지 나돈다. 인도네시아 군부와 경찰은 미국 국립지리정보국(NGA)이 이용자의 실시간 위치 정보(GPS)에 기반을 둔 포켓몬고를 데이터수집에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페이스북을 통해 비슷한 공작을 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인터넷매체 카테온은 나이앤틱의 설립자 존 행크가 CIA의 벤처 캐피탈회사인 인큐텔(In-Q-Tel)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았다며 CIA와 포켓몬고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게임으로 인한 혼란에서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군 기관지 성조지 등에 따르면 일리노이 주 방위군은 최근 게이머들이 훈련시설에 무단 침입하거나 기지 출입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자 “포켓몬 사냥꾼,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종교적인 이유로 포켓몬 트레이너들의 활동이 금지된 곳도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종교위원회는 이 게임을 ‘반 이슬람’으로 규정, 금지하는 파트와(포고령)를 내렸다. 사우디 측은 2001년 포켓몬 비디오게임과 카드놀이도 사행성이 있다며 금지했다. 이번 파트와는 포켓몬 고의 이미지들이 일본의 신도 사상과 기독교, 이스라엘 시오니즘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이 진화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기독교 극우파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진화론을 부정한다. 파트와는 “(게임을 하는) 어린이들이 ‘진화’라는 단어를 수없이 언급하는 사실은 충격적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포켓몬 고는 닌텐도가 출시했으나 정작 일본에서는 22일부터 게임이 가능해졌다. 일본 내각 사이버안전센터(NISC)는 ‘포켓몬 트레이너 여러분에 대한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9가지 항목을 설명한 홍보물을 20일 배포했다. 내용은 본명 대신 별명을 사용해 개인 위치추적을 피할 것,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릴 때 거주지가 드러나는 장면은 피할 것, 허위 광고에 속지 말 것, 위험한 곳에 가거나 길을 걸으면서 하지 말 것 등이다. 야외에서 게임할 때 천재지변에 대비하고 열사병에 주의하라는 당부도 포함됐다.

“나를 잡아보세요”.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 이들리브의 카프르 나블이라는 소년이 21일 ‘포켓몬 고’ 게임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서 있다.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시리아혁명군 미디어사무실’(RFS)은 세계가 비참한 현실보다 게임 아이콘에 더 열광하고 있다며, 내전에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 RFS 페이스북

“나를 잡아보세요”. 내전에 시달리는 시리아 이들리브의 카프르 나블이라는 소년이 21일 ‘포켓몬 고’ 게임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서 있다. 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시리아혁명군 미디어사무실’(RFS)은 세계가 비참한 현실보다 게임 아이콘에 더 열광하고 있다며, 내전에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 RFS 페이스북

세계 사람들이 게임에 열중하는 사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잊혀진다. 시리아 독재정권에 맞서온 ‘시리아혁명군 미디어사무실’(RFS)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에는 포켓몬 그림을 들고 관심을 호소하는 아이가 담겨 있다. 아이가 손에 든 종이에는 “내 이름은 카프르 나블, 이들리브에 살고 있어요. 와서 나를 잡아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포켓몬 피카츄가 그려져 있다. 비참한 현실보다 게임 아이콘이 더 관심을 끄는 현실 속에서 좌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는 지적했다. 시리아 그래픽 디자이너 사이프 알딘 타한은 포켓몬 고 ‘시리아 버전’을 선보여 내전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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