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이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는 키가 107㎝에 불과했다. 중·신석기 시대 유럽에서 발견된 유골의 키가 평균 168㎝였으니 320만년간 60㎝가량 커졌을 뿐이다. 기원전 2000년 무렵 터키인과 그리스인 평균 키는 166㎝였다. 비교적 작은 편인 아시아인(일본)은 기원전 300년 161㎝였던 키가 1800년대 초 158㎝로 줄었다는 기록도 있다. 네덜란드 남성은 평균 키가 2014년 기준 183㎝로 세계 최장신이지만, 1830년대에는 164㎝였다. 인류의 키는 최근 200년 새 부쩍 큰 셈이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팀이 전 세계 국가의 1914~2014년 평균 키를 조사한 결과 한국 여성은 162.3㎝로 100년 새 20.1㎝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200개 국가 가운데 가장 가파르게 성장했다. 100년 전 195위로 꼴찌 수준이었던 한국 여성의 키 순위는 중상위권인 55위로 뛰어올랐다. 한국 남성은 174.9㎝로 같은 기간 15.1㎝ 커져 성장폭이 전 세계에서 3번째였다. 연구팀은 “지난 100년간 경제발전과 영양, 위생, 보건환경 개선으로 발육이 좋아졌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한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한 만큼 시민 키도 성장했다는 뜻이다.
인류의 키에 대한 전망은 다양하다. 영국의 한 진화학자는 3000년이 되면 인간 수명이 120세로 늘어나고, 평균 키는 200㎝에 이른다고 예측했다. 반면 영양 상태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생태계가 평형을 유지하는 현재 환경에서는 진화가 멈춰 성장도 정체 또는 둔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100년 전 4~5위였던 미국인의 키는 현재 40위 안팎으로 떨어졌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영양 상태는 오히려 불균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키도 지금보다 많이 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교육부가 고3 학생의 평균 키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5년 기준 남학생 173.5㎝, 여학생 160.9㎝로 10년 전에 비해 각각 0.1㎝씩 작아졌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루 6시간 남짓으로 줄어든 수면시간 부족 탓이 크다. 수면 부족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대학 입시라는 제도 하나가 한국인의 키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