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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고, 순환해야 산다

입력 2016.07.26 20:34

수정 2016.07.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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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카야마현의 시골 마을 가쓰야마에 작은 빵집 ‘다리마루’를 열어 ‘변방의 기적’을 일궈낸 와타나베 이타루는 ‘착한 경영’을 실천하는 빵집 주인이다. 그는 빵을 만들 때 농약과 비료가 들어간 재료는 일절 쓰지 않는다. 밀은 직접 재배하고, 천연효모도 채집한다. 와타나베는 빵집이 문을 닫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이윤만 남긴다. 번 돈은 직원들의 월급을 올리고, 빵의 품질을 높이는 데 쓴다. 그의 경영철학은 “썩어야 산다”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생긴 것은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정동에서]썩고, 순환해야 산다

자연생태계는 썩어야 산다. 균은 생명력이 떨어진 생물들을 부패시켜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함석헌의 “씨알은 깨지고 죽어야 산다. 씨알이 흙 속에 묻혀 썩어야 싹이 나온다”는 씨알사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썩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는다. 그러니 순환할 수 없고, 균형도 깨지게 된다. 이스트와 설탕 등 첨가물을 듬뿍 넣어 빵을 부풀리는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선 돈으로 국내총생산(GDP)을 늘리고, 주가를 끌어올려 경제를 살찌게 한다. 그리하여 ‘고도 비만’이란 병에 걸린 경제는 거품을 낳게 된다. 어찌 보면 거품붕괴는 경제가 균형을 찾아가는 자정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선 거품붕괴를 용납하지 않는다. 적자 국채 발행과 양적양화, 제로금리 정책 등을 통해 거품붕괴를 막곤 한다. 그냥 놔두면 썩기 마련인 빵에 방부제를 넣어 유통기한을 연장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방부제는 인체에 유해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부실을 감추고, 거품붕괴를 인위적으로 막으면 위기상황에 빠지게 된다.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은 대규모 부실을 감추려 15억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르다 2001년 파산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부실과 거품을 숨긴 채 약탈적 대출을 일삼은 금융자본가들의 탐욕에서 비롯됐다. 썩은 과일에 해충만 들끓듯, 부실기업에는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만 득실거린다. 5조원대의 부실을 감춰왔던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은 실적을 부풀리고,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부실의 싹을 자르기는커녕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 자리를 나눠 먹고, 억대 연봉을 챙겼다. 썩을 대로 썩은 기업에 돈이란 방부제를 쏟아붓는 것처럼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생태계는 순환의 법칙을 통해 유지된다. 경제도 순환해야 산다.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 혈맥은 막혀 버린다. 기업은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하고, 과도한 이윤은 사회에 배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경기가 부양된다는 ‘낙수효과’를 맹신하는 경제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대기업·고소득층 지원정책의 또 다른 이름으로 판명났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낙수효과를 전제로 짠 경제성장 전략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실토하지 않았는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올해 국가예산(387조원)의 2배 수준인 754조원에 이르고, 상위 1%의 자산은 국민 평균 자산의 10배에 달한다. 반면 가계부채는 1230조원을 넘어섰고, 매달 갚아야 할 빚이 가처분소득의 40%가 넘는 ‘한계가구’도 134만가구나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법인·소득세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보다 고작 7.3%(440원) 오른 시급 6470원으로 결정했다. 이쯤 되면 소득양극화 해소를 요구하는 99%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상위 1%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99%의 민중을 개·돼지 취급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대학 동기인 김정주 넥슨 창업주에게 받은 돈으로 주식을 사 12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거둔 진경준 검사장, 처가의 1300억원대 부동산 부당거래와 농지법 위반 등 숱한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고액 성매매 의혹을 사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런 상위 1%를 향한 서민들의 분노는 어찌할 셈인가.

정부는 ‘낙수효과’에 기댄 경제정책을 폐기하는 대신 대기업·고소득층의 세금을 늘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는 ‘분수효과’를 꾀하는 게 옳다. 그래야 소비가 늘어 내수를 살리고, 생산과 투자 증가로 이어지는 경기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위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로는 메마른 대지를 적실 수 없다. 아래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가 제격이다. 낙수는 땅에 골이 파이게 하지만 분수는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물을 살린다. 낙수와 분수, 성장과 분배, 1%와 99%, 대체 뭣이 중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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