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8월의 첫날, 신임 검사 9명이 검은 법복을 입고 선서하는 임관식이었다. “나는 이 순간…”으로 시작하는 선서에서는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를 다짐했다. 낯설고 목에 걸렸다. 서초동에서 잘나갔던 ‘영감’ 진경준·홍만표·우병우·김대현도 20~30년 전 저 자리에서 오른손을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193자의 짧은 선서는 사문(死文)이 됐다.
수치스러운 ‘검사 1호’ 기록이 줄 잇고 있다. 게임사업 하는 친구를 스폰서 삼고 120억원대 주식을 손에 넣은 현직 검사장(진경준)이 구속·해임됐다. 처가 상속재산과 수임 비리 의혹이 뒤섞인 청와대 민정수석(우병우)은 특별감찰을 받고 있다. 검찰은 1948년, 민정수석실은 1969년 출범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특수통 검사장(홍만표)은 과거 본인이 수없이 기소했을 수임·탈세 비리로 수의를 입었다. 술 먹고 후배 검사에게 운전셔틀을 시키고 예약 식당이 맘에 안든다고 상소리로 모욕을 준 부장검사(김대현)도 징계위에 회부됐다. 도려내겠다던 거악(巨惡)과 환부를 안에서 키운 격이다. 검찰수장은 고개를 떨궜다. 이보다 더 혀를 차는 일이 몰아칠 때는 없었다. 탁류가 서초동을 덮고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그 속에서도 내 사람 챙기는 아귀다툼이 보인다. 가히 ‘검란(檢亂)’이다.
“그린에 가면 퍼터를 들어야죠.” 외환위기 직후 여의도에서 미래에셋 박현주 대표에게 들은 말이다. ‘금융 3인방’으로 불린 사람들이 기업사냥이나 주가조작을 하다 구속되고 혼자 잘나가는 비결을 묻자, 골프에 빗대 “그 사람들은 그린에 올라가서도 드라이버를 잡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치부에 끝이 없고, 독불장군처럼 군림하다 무너졌다는 비유였다. 1998년 금융 3인방과 2016년 검찰 4인방의 흑역사는 그렇게 복사판이다.
홍만표가 공적이 된 것도 싹쓸이였다. 2011년 9월 변호사 개업 후 2012년까지 신고한 매출만 110억원, 한달에 7억원꼴이다.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16억원을 벌었다가 총리 후보자 낙마 때 ‘전관예우’ 홍역을 앓은 안대희보다 2배 더 많다. 서초동엔 “다 쓸어간다”는 원성이 쌓였다. 홍만표가 괴물인가? 아니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검사의 독직(瀆職)을 키운 것은 역설적으로 검찰이다. “나! 대한민국 검찰이야.”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처럼, 검찰은 막강하다. 감사원·국세청·국정원이 고발해도 수사·기소권은 검찰이 쥐고 있다. 검사가 부장의 집사로 살고, 양심을 파묻고 살다 재정신청 부메랑을 맞는 일도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까라면 까는 조직의 폐쇄성에 기인한다. 대한변협이 요구한 홍만표의 62개 몰래 변론 목록을 검찰은 내놓지 않는다. 검사들에게 불똥 튀는 것을 막기 위함이리라. 그렇게 끌고 밀어주는 ‘검연(檢緣)’은 엄존한다. ‘검사동일체’라고 쓰면 사람들은 ‘상명하복’으로 읽고 있다.
더 공고한 독점은 지역이다. 박근혜 정부 전반의 검찰 인사가 ‘영남 독주’라면 지금은 ‘TK 독주’다. 지난해 말 김수남 총장의 첫 인사에선 PK도 ‘고검장(9명) 전멸, 검사장급(43명) 한명’의 제목이 달렸다. 그나마 우병우와 친한 최윤수 검사장(부산고검 차장)은 두달 만에 국정원 2차장으로 옮겼다. ‘우병우 사단’이 특수·정보 라인을 휘어잡은 인사였다. 넓혀봐도 매한가지다. 홍경식(경남 마산)의 10개월을 빼면 민정수석은 4년간 TK라인(곽상도-김영한-우병우)이었고, 국세청장·공정거래위원장·검찰총장도 TK다.
“승진 0순위 자리엔 층층이 TK가 앉아 있더라.” YS가 집권한 1993년 정부 고위인사가 “검찰도 군도 국세청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30년 적폐가 쌓여 있다”며 한 말이다. 서초동 밥상에는 지금 고관 검사들이 아래까지 요소요소 챙긴다는 말이 섞인다. 후배를 키우면 본인은 힘있는 전관이 되는 법이다. TK 정권은 어느새 10년을 향하고 있다. 모를 바도 아니다. 사면초가에 갇힌 청와대가 사정의 정점에 있는 우병우를 내치지도, 감싸지도 못하고 있다. 이래도 저래도 레임덕으로 느낄 법하다. 버티기의 끝은 뭘까. 독점, 그것을 덮는 독선이다.
8월 국회가 검찰을 벼르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청와대 검사 파견, 검경 수사권 조정, 독직검사 중징계 같은 이슈가 다 던져질 판이다. 검찰은 ‘셀프개혁’에 나섰다. 2010년 스폰서 검사, 2011년 벤츠 검사 때도 그랬다. 무신불립이다. 여의도에 사정 펀치를 날리고 ‘경찰 독직’ 카드로 맞서던 예전의 검찰 기세는 꺾여 있다. 개혁 바람의 진원지가 국민임을 직감했기 때문일 터다. 법조계에는 “다음 임지를 포기한 검사, 돈을 포기한 변호사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2016년의 검란, 그 본질은 독점이다. 수술대의 첫 메스도, 정책의 답도 거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