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은 가격정찰제가 자리를 잡았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흥정을 해 덤이라도 하나 받아야 속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반값에 판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초 가격이 얼마인지 상관없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1949년 7월 경향신문에 ‘부인용 여름옷감 반값으로 제공합니다’라는 백화점 광고가 실리기도 했으니, ‘반값 마케팅’은 오래된 판매전략이다.
반값이 사실상 정상가인 사례도 있다. 의류가 대표적이다. 업체별로 다르지만, 국내 의류시장에서 가격표대로 팔리는 옷은 30% 안팎이다. 몇 달 지나면 백화점이나 대리점 등에서 20~30%를 할인해 판다. 1년가량 지난 옷은 상설할인점, 아웃렛 등으로 넘어가고, 2~3년 뒤에는 무게에 따라 팔리는 땡처리 신세가 된다. 의류업체는 땡처리 단계까지 계산해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실제 옷값은 가격표의 절반 안팎으로 추정된다.
얼마 전까지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빙과류에는 아예 가격 표시가 없었고, 40~60% 상시 세일 품목이었다. 다만 이달 초부터 정찰제가 시행돼 반값 아이스크림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1992년 대선 후보였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정 후보가 대권 도전에 실패하면서 반값 아파트는 잊혀지는 듯했다. 17년 뒤인 2009년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반값 아파트가 현실에 등장했다. 택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해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춘 아파트였다. 실제 서울 강남과 경기 군포 등에서 760가구가 분양됐다. 그러나 싼 땅을 찾기 어렵고,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 12일 폐기됐다.
상품에만 반값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국회 대표 연설에서 연간 1억4000만원 수준인 국회의원 세비를 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의원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대신 엊그제 새누리당은 세비 동결 방안을 내놨다. 제값은 값이 싼 것만 뜻하지 않는다. 효용성이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비를 반 깎았는데도 반값도 못하는 정치를 한다면 그야말로 비싼 정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