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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좀비

입력 2016.08.21 21:02

영화 <부산행>이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순항 중이다. 매력적인 배우 공유와 마동석의 연기, 고속열차라는 생소한 배경 등 여러 요인들이 이뤄낸 성과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객의 발길을 이끈 것은 한국 영화 최초의 좀비 실사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아침을 열며]우리 곁의 좀비

연상호 감독이 그려낸 좀비들은 외국산보다 훨씬 인간에 가깝다. 또 기괴한 형상 속에서도 시각과 청각만은 예민하게 살아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재난 속 인간애를 그렸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추악한 본성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좀비들이 스크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밥먹고 살아가는 좀비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좀비는 사전적 의미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물어뜯고,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존재들이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좀~ 비’정상적인 인간들이라는 말이다.

최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거의 쓰러질 듯 90도로 인사하는 장면이 기자 카메라에 잡혔다. 경제부총리는 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총책임지는 최고위 관료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경제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상 경제대통령이라 해도 과한 표현은 아니다. 그만큼 그는 5000만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또 자신이 추구하려는 경제정책을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대통령이 거부하면 설전을 벌여서라도 관철시켜야 할 경제철학과 소신을 갖춰야 한다. 그런 자리에 있는 그가 과거 왕조시대에서나 볼 법한 저자세로 허리를 수그리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유 부총리 때문인가. 그가 살려내기엔 이미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하향 국면에 들어섰음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과도한 저자세는 자신을 부총리로 발탁해 준 최고권력자에 대한 ‘성은망극형’ 수준이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윤장현 광주시장의 인사법도 격에 어울리지 않게 ‘좀 비’정상적이었다. 윤 시장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오찬에서 박 대통령에게 폴더형 인사를 해 주목을 받았다. 여당 소속 시·도지사들도 깍듯한 수준에 그쳤지만 윤 시장만 유일하게 정수리를 대통령에게 보일 정도로 깊숙이 수그렸다. 지자체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다. 시·도지사는 과거처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뽑은 선출직이다. 게다가 광주가 어떤 지역인가. 박정희에서 시작된 군사정권에 맞서 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렸던 민주성지가 아닌가. 그 민주성지를 대표하는 광주시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박 대통령에게 폴더형 인사를 하다니. 개인적인 인사습관이라며 백번 양보한다 해도 자신이 가지는 대표성과 위상을 망각한 저자세의 전형일 뿐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좀비는 다른 곳에 살고 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바로 청와대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비정상적인 행태는 여기서 시작된다. 멀리는 세월호 침몰 사태부터 최근 사드 배치 결정, 온갖 비리 오물을 뒤집어쓴 우병우 민정수석 지키기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국민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갈등을 흡수 조율하는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다. 통일에 대한 정책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여론과 뜻을 따르기는커녕 이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좀~ 비’ 행태는 박 대통령의 71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첫 구절은 건국절이었다. 얼마 전 독립군 노병의 간곡하고도 애끓는 호소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버렸다. 아버지 박정희의 친일행각을 덮기 위해 한국 독립운동사를 무시하는 건국절을 보란 듯이 거론하며 출발했다. 이어 그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누가 비하하느냐, 불가능은 없다, 불굴의 DNA,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거쳐, 급기야 콩 한 조각도 나누며 이겨내자고 일갈했다.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전도몽상의 전형이자, 왕조시대 교지 수준의 말을 내뱉었다. 이 정도면 정상 수준이 아니다. 비정상이어도 한참 비정상인 것이다. 이미 레임덕에 들어선 그의 이러한 행태는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사고치는 어린아이의 일탈을 연상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부탁하자. “정말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면 국민들의 고통과 목소리에 눈과 귀를 열어라. 영화 <부산행> 속 좀비들은 그래도 눈과 귀는 열려 있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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