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뮤지컬 작곡’ 김문정 음악감독…내달 ‘도리안 그레이’ 개막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작곡가 김문정. 씨제스컬쳐 제공
“요즘 마음을 다스리려고 <미움받을 용기>까지 읽었어요. 곡을 쓰는 건 나의 자유, 욕하는 건 너의 자유(하하). 이렇게 담대하게 마음먹으니 편해요.”
개막이 내달 3일로 다가오면서 심리적 압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문정 음악감독(45)은 뮤지컬 관객에겐 주연배우만큼이나 친근한 인물이다. <레미제라블> <맨오브라만차> <레베카> <모차르트> <서편제> <영웅> <명성황후> 등 내로라하는 작품들 가운데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드물다.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 그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러나 작곡은 또 다르지 않은가. 그가 <내 마음의 풍금> 이후 8년 만에 두번째 뮤지컬 작곡에 나섰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10월29일까지·성남아트센터)다. 대형 창작뮤지컬의 경우 해외 유명 작곡가가 작품을 맡는 등 국내 작곡가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다. 김문정 감독의 작곡에 기대와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작이 워낙 현학적이고 어려운 작품이에요. 주옥같은 대사들도 많고요. 가사도 귀를 쫑긋해서 들어야 이해할 수 있어요. 겁도 없이 시작한 셈이죠. 어떤 곡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고, 또 다른 곡은 스스로 ‘괜찮은데’ 하며 만족하기도 해요. 무대에 오른 후 ‘원작을 그려내는 데 애썼다’ 이 얘기만 들어도 좋겠어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의 배우 김준수 .
<도리안 그레이>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도리안 그레이(김준수 역)가 아름다움에 대한 탐욕으로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을 맞바꾸며 서서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세기 말 영국이 배경이다. 내면을 포함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 욕망에 사로잡힌 인류학자 헨리(박은태), 도리안의 아름다움에 영감받아 그를 그린 화가 배질(최재웅), 도리안을 사랑하는 여배우 시빌(홍서영) 등이 이야기를 이끈다. 이지나 연출이 각색과 가사를, 대본은 조용신 감독이 맡았다.
순수한 10대 청년 도리안이 쾌락에 빠지고 악행을 저지르며 30대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애초 듣기에 아름답고 폼나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음침하고 기괴하고 뒤틀린 인간의 내면”에 작곡의 방점이 찍혔다. 김 감독은 “때론 멋지게 뽑아올리는 곡들에 대한 유혹도 있긴 했지만 작품에 충실한, 다양한 관객들의 욕구에 맞는 음악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또 다른 나’ ‘Who is Dorian?’ 등 26곡을 완성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한세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시간에 많이 쫓겼다. “그냥 못한다고 할까, 포기하려고 망설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앞서 작곡한 곡들을 들은 김준수 배우가 문자로 ‘곡이 정말 좋다’며 용기를 주더라고요. 김준수 배우는 도리안의 악마적이면서도 섹시한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는 음색을 지녔어요. 박은태 배우는 학구적인 자세로 음악에 접근한다고 할까요. 어떤 곡이든 믿음이 가는 배우죠.”
실용음악을 전공한 김 감독은 2001년 <둘리>로 본격적으로 뮤지컬계에 뛰어들었다. 이전엔 TV방송음악, CF음악, 뮤지션 콘서트 등에서 음악감독과 세션을 맡았다. 27세 때 본 비디오 한 편이 뮤지컬계로 이끌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10주년 기념공연을 보는데 배우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음악감독이 너무도 멋지고 음악이 아름다워 혼자서 펑펑 울었다. 2013년 <레미제라블> 한국공연 초연이 무대에 올랐고 음악감독을 그가 맡았다. 그동안 자신이 주축이 돼 만든 ‘THE M.C 오케스트라’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며칠 전에 <도리안 그레이> 런 스루(실제 공연처럼 연습하는 것)를 했어요. 혼자 상상하던 곡을 배우들이 부르며 완성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뿌듯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참 멋있구나, 예술가의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느끼기도 하고요. 이젠 별 욕심 없어요. 오늘 공연 잘 마치면 오늘을 잘 살았구나,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 것 같아요.”
하지만 욕심이 없는 것 같지 않다. 그는 “멋진 뮤지컬 음악을 지휘하는 최초의 할머니 지휘자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