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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절벽들

입력 2016.08.30 21:06

수정 2016.08.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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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규 논설위원

여기 한 정치인이 있다. 외조부와 종조부가 총리였고, 아버지는 장관이었다. 그도 총리다. 인근 국가에서 보면 보편적 세계 질서, 평화와 안녕보다는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못된 정치인이다. 대놓고 그 나라 우익 이익을 대변한다. 영구 집권과 자신의 임기 연장을 꾀하는 정치꾼이다.

[정동에서]어떤 절벽들

자신은 그런 특질을 부인하지 않는다. 은근히 부각시킨다.

한국민은 그를 싫어한다. 8월 아산정책연구원 외국 정치 지도자 호감도 조사에서 10점 만점에 1.84점으로 꼴찌에서 두번째다. 자국에서 인기는 안정적으로 높다. 그럴 수밖에. 현재 유권자는 물론 미래 표심까지 아우르는 정책에 올인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총리대신이다. 그는 각종 ‘절벽’(꽉 막힌 상황) 상황을 타개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소비 절벽’을 깨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일본은 최저임금액을 평균 25엔(274원·이하 30일 현재) 올려 823엔(9012원)으로 정했다. 이는 지역별로 다르게 10월부터 적용된다. 물가가 제일 비싼 도쿄는 932엔(1만205원), 가장 낮은 미야자키현은 714엔(7818원)이다.

한국 정부는 내년 최저시급을 6470원으로 정했다. 올해보다 440원 올렸다. 일본이 잘사니까 최저임금이 높은 게 당연할까. 꼭 그렇지 않다. 질(質)이 문제다.

햄버거 빅맥 가격을 비교해 각국 통화 구매력 등을 평가하는 빅맥지수라는 게 있다. 7월 한국 빅맥지수는 3.86이다. 빅맥 하나를 사먹으려면 3달러86센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3.47이다.

내년 최저시급을 달러로 환산하면 일본 도쿄는 9달러12센트, 한국은 5달러78센트다. 도쿄에서 1시간 일해 번 돈으로 빅맥 2개를 사먹고 2달러18센트가 남는다. 한국에선 빅맥 1개를 사먹으면 1달러92센트 남는다. 환율, 빅맥지수, 최저임금의 시점이 달라 오차가 있을 것이다. 다만 정변 같은 사태가 없는 한 이 추세는 유지될 것이다.

이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 아베는 정부 차원에서 “임금을 많이 주라”고 기업을 압박해왔다. 이를 통해 경기를 살리고, 월급쟁이 유권자와 그 가족 표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한 것이다. 임금이 많이 올라 재계를 힘들게 할까봐 안달하는 한국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아베 정부는 ‘취업·노동 절벽’ 상황을 일본판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꾸려고 한다. 여성 취업을 늘리기 위해 50만명의 아동 수용시설을 확보키로 했다.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가구의 세금 부담도 줄일 방침이다.

노동자가 초과근무로 늦게 퇴근했을 때 출근 전에 최소한 휴식을 보장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인터벌 규제’ 제도를 내년 도입하기로 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을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로 지정,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당기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도 ‘인구 절벽’은 심각한 문제다. 아베는 1억 인구를 지키겠다며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을 임명했다. 저소득·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심하고 아이를 낳는 사회가 목표다.

써놓고 보니 이건 ‘찬안배진삼가(讚安倍晋三歌)’가 돼 버렸다. 어쩌다, 정치인이 표심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격률(格率)이 시행되는 걸 부러워하게 됐을까.

바다 건너에 있는 또 다른 정치인 때문이다. 그도 대를 이어 대통령을 하고 있다.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일본보다 더하다. 소비, 성장, 노동, 고용, 결혼, 인구, 남북, 외교 등 모든 부문이 절벽 상태다. 한데 표심을 살피기보다는 ‘마이 웨이’만 고집하고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7월1일 국회에서 “대통령께서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00% 일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최근 박 대통령 행보 중 눈에 띄는 건 딱 2가지다. ‘비서 구하기’와 ‘기승전북(起承轉北·무슨 일이든 북한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 내기)’이다.

기중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논란은 국정을 막아선 4면 절벽이 돼 버렸다. 조선시대로 치면 승정원(왕의 비서기관·청와대)의 좌승지쯤 되는 인사를 구한답시고 승정원과 의금부(검찰) 전체가 난장을 치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우 수석 비판자를 ‘부패 기득권과 좌파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청년들에게는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한다고 타박한다.

뭐, 좋다. 그게 소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민을 혼내기만 하지 말고 아베처럼 뭔가를 해줘야, 아니면 하는 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는 절벽이랑 싸우는데, 다른 누구는 스스로가 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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