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차례상엔 피자와 치킨이 올라갔다. 추석인 지난 15일 안산 세월호 참사 합동분향소엔 아이들이 좋아하던 먹거리가 놓였다. 3년째다. “이젠 술도 한잔 나눌 때가 됐는데….” 다시 무너져내리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얼굴을 무릎에 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더 생각나고 보고파서일 터이다. 그날 오후 4시16분, 광화문광장에도 합동차례상이 차려졌다. 3년째다. 시민들도 음식을 가져왔으나 나누진 않았다. 텐트 안에선 7월부터 ‘세월호특별법 개정과 특별조사위 연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거차도 텐트에도 3년째 세월호 인양 현장을 내려다보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목마름은 더해졌다. 정부가 통지한 특조위 ‘강제 종료’ 시점이 30일로 닥쳤다. 지난 6월 공무원·예산 철수를 시작하고, 백서 활동 기간 3개월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정부는 특별법이 공포된 2015년 1월부터 기산하고, 특조위는 정부 예산이 확정된 8월4일을 출발선으로 삼는다. 국회예산처도 “정부의 1월1일 기산일은 입법취지에 반한다”며 최소한 그해 시행령 제정일(5월11일)로 하라고 권했다. 다 거부됐고, 이제 사흘이 남았다.
수장된 세월호를 일깨운 것은 지진이다. 지난 12일 5.8 강진이 경주에서 터졌을 때 대한민국은 다시 바닥을 드러냈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접속 4만4000건에 먹통이 되고, 재난문자는 12분이나 늦었다.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 1TV는 드라마를 틀었다. 카톡이 불통되고 겁먹은 사람들은 운동장·천변·당산나무 밑으로 달려나왔다. 부산에선 “가만히 있으라”며 고3들을 야간자습시키다 항의받은 학교도 있다. “세월호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혀를 찼지만, 1주일 후 4.5 여진이 터졌을 때도 용량을 80배 보강했다는 안전처 홈피는 먹통이고, 재난문자는 12분 늦고, 사람들은 집을 뛰쳐나왔다. 대한민국 재난 시계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에 멈춰 있다.
4.0 밑의 지진에는 눈도 깜빡 안 한다는 일본과 바로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진동 감지와 동시에 휴대폰 경보음이 울리고,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지는 일본은 부럽다. 2분 내 지진특별방송이 시작되고, 도심 빌딩 피난처에 수천명의 비상식량을 쟁여둔 일본은 참 멀다. 그 차이가 어디쯤일까. 일본은 1923년 간토대지진이 난 9월1일이 ‘방재의날’이다. 보름간 호들갑 떤 한국에서 93년 준비한 일본을 보고 있는 셈이다. 땅속 지도를 20년간 그린다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2009년 원전 옆 활성단층을 발견하고도 3년 만에 접었다. 예산이 20억원뿐이어서 시추공 몇 개 뚫어보고 성급히 결론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찜찜해도, 추가 연구 없이 원전을 승인했다. 건축물 내진율 6.9%지만, 안전처가 지난해와 올해 신청한 지진 인프라 예산 1219억원은 전액 삭감됐다. 준비 없는 배짱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가 가라앉은 2014년 뒤에도 바뀐 게 없는 것이다.
멀지도 않다. 9월1~2일 세월호 3차 청문회까지도 그랬다. ‘청와대의 KBS 보도 통제’ 증언과 ‘에어포켓 쇼’ 얘기가 터졌지만, 공영방송 KBS·MBC가 중계하지 않는 세월호 청문회는 유튜브에만 돌고 있다. 청와대와 해양수산부, 해경·방송 수뇌부가 빠진 자리는 ‘책임자의 답’이 없는 허탕·깃털 청문회였다. ‘聽聞’이라는 한자와 ‘Hearings’라는 영어 단어를 누가 부끄럽게 하는가. 청문회엔 눈길도 주지 않고, 팩트는 모르쇠하고, 보도도 않고, “더 진상규명할 게 있느냐” “세금 먹는다”며 판 접으라는 권력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가 덮어지는가. 메르스 때도, 구의역 청년노동자 사고 때도, 가습기 살균제와 백남기 청문회에서도 안전한지 캐묻는 대화의 출발선은 세월호였다.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 응어리진 약자의 ‘무덤’, 잊진 말아야 하는 ‘부채’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한반도의 남녘은 언제부턴가 길도 없고, 사과도 없고, 책임도 묻지 않는 3무(無)의 땅이 됐다. 권력의 독선은 편을 가르고, 공직사회의 무능을 가리고 있다. 대통령 의중과 심기만 헤아리는 나라, 아픔을 쉽게 잊고 흘려보내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저잣거리에선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며 술잔을 부딪치고, 배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세월호를 끝내자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왜 세금을 내는가. 나라가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가.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가.
26일 찾은 광화문광장엔 ‘10월1일 세월호 참사 900일 촛불문화제’ 안내 팸플릿이 굴러다녔다. 강제로 문 닫아도 또 다른 100일을 시작하겠다는 결기가 보인다.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서는 특조위원·유가족·시민 16명이 단식하고 있었다. 책을 편 사람, 편지 쓰는 사람,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리본이 얼마나 더 쌓여야 답이 나올까. 9월도 이제 사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