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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자유, 행복을 위한 헌정질서

입력 2016.11.09 21:37

수정 2016.11.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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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인권수첩]안전, 자유, 행복을 위한 헌정질서

광장은 “박근혜 퇴진!” 구호로 뜨겁다. 1960년 4월처럼, 또는 1987년 6월처럼 모처럼의 국민적 항쟁이 시작되었다. 국민적 요구는 뜨겁지만, 국회 등 정치권은 그저 뜨뜻미지근하다. 친박이야 논외로 쳐도, 다수의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따위만 읊조리고 있다. 그나마 박원순, 안철수, 이재명 같은 사람들이 시민의 뜻을 좇을 뿐이다. 다수의 주류 정치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헌정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헌정질서가 대통령 임기 5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그건 무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일 게다. 토머스 페인은 “헌법은 정부에 선행하며, 정부는 헌법의 소산일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은 물론, 국가도 모두 헌법에서 비롯되었다. 헌법은 국민의 의지에서 나왔다.

[오창익의 인권수첩]안전, 자유, 행복을 위한 헌정질서

위계로 따진다면, 국민-헌법-국가-대통령-대통령 임기 순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대한 헌법의 우위, 이걸 우리는 입헌주의라 부른다. 그러니 헌정질서와 헌정질서를 위한 일개 수단을 혼동해선 안된다. 헌정질서의 핵심은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 그리고 제10조에 규정된 국민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닌 국가이다.

박근혜 정권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박근혜의 범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정을 수행할 자질이나 능력도 없고, 도덕적 근거마저 상실한 박근혜 정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탄핵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정치권에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별로 없다. 헌법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제65조)를 탄핵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무성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고, “대통령직이라는 공적 권력이 최순실 일가가 국정을 농단하고 부당한 사익을 추구하는 데 사용”되었으니, 딱 맞아떨어지는 탄핵 사유다.

탄핵제도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통령을 해임하는 민주적인 공무원 파면제도다. 국정이 온통 마비된 상황에서,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를 가동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진정으로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바란다면, 바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 중요한 건,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지, 정치적 셈법 따위가 아니다.

헌법 위반의 공범 역할을 한 새누리당이야 그렇다 쳐도, 야당마저 탄핵이란 말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은 ‘중대 결심’ 운운하며 짐짓 점잖은 체만 하고, 우상호는 광장은 광장의 방식, 국회는 국회의 방식이 있단다.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왔으며 국회가 바로 광장의 소산이라는 걸 벌써 잊은 걸까. 1987년 광장의 힘으로 여태껏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의 말치곤 너무 고약하다.

야당은 공범은 아닐지 몰라도, 국정 파탄을 막지 못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광장의 함성도 경향, 한겨레, JTBC 등 언론의 끈질긴 추적과 시민들의 호응이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야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별 존재감도 없었다. 여소야대의 새로운 지형에도 불구하고, 그 지형을 활용해 새롭게 돌파한 국면이 뭔지도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벌써 정권을 잡은 사람들처럼, 부자 몸조심 수준에 멈춰 있다.

대한민국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영원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헌법 전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 자유, 행복은 참담하게 짓밟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정질서는 외면하고, 지엽말단에만 골몰하는 건, 광장의 함성을 거슬러 오로지 자기 기득권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지진, 북핵 등 안전과 관련한 여러 현안에서 박근혜 정권은 내내 무능했다. 때론 안전에 관심조차 없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국가와 국가지도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더 안전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정부만 멀쩡했어도 겪지 않았을 희생이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안전을 위해 박근혜의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하나.

자유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가 모두 후퇴했다.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조차 확립하지 못했다. 검찰과 경찰의 힘은 지나치게 커졌다. 온갖 종류의 블랙리스트가 떠돌고,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으면 대기업마저 좌파로 몰아버린다.

행복은 또 어떤가. 작가 조세희의 말처럼 지금 행복한 사람은 악당 아니면 바보밖에 없는 것 같다. 다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시간밖에 못 자고, 가장 긴 시간 일하며, 가장 늙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나라, 자살률 1위에 출산율 꼴찌라는 지표는 우리가 가장 살기 어려운 상황, 곧 가장 행복하지 못한 지경에 내몰려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게 꼭 박근혜 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남은 1년4개월을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가운영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박근혜 일당에게 국정을 맡겨둘 정도로 우리의 형편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헌법과 법률을 일상적으로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박근혜를 당장 쫓아내야 한다.

가난했고, 국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1960년의 대한민국은 이승만 퇴진 이후, 아무런 불상사 없이 새로운 공화국을 출범시켰다. 56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그야말로 뻔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광장의 요구는 간명하다. 퇴진이든 탄핵이든, 당장 그 자리에서 쫓아내자는 거다. 광장은 이제 시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을 엄격하게 구분할 거다. 대선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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