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에 새로 드러난 ‘최순실 국정농단’
20일 검찰이 발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 결과를 보면 최순실씨(60)의 미르재단 설립 과정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이라는 국가 행사까지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는 자신의 딸 정유라씨(20)의 초등학교 동창 학부모가 현대자동차그룹에 납품할 수 있게 해주고 1천만원대 샤넬백을 받는 등 사리사욕도 채웠다.
최씨 등의 공소장을 보면 최씨는 기업들이 빠르게 자금 출연을 하지 않아 미르재단 설립이 지연되자 리커창 중국 총리의 지난해 10월 말 방한 일정을 이용했다. 최씨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에게 “리커창 총리가 곧 방한할 예정이고 대통령이 지난 중국 방문 당시 문화교류를 활발히 하자고 하셨는데 구체적 방안으로 양국 문화재단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단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이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리커창 총리 방한 직전인 지난해 10월19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57)을 불렀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리커창 총리 방한 때 양국 문화재단 간에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안 전 수석은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과 경제수석비서관실 최모 비서관에게 즉시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기업들에 출연금 분배 압박이 들어갔다.
이틀 뒤인 21일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어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미르’라고 하라”는 지시와 이사진 명단까지 전달받았다. 미르라는 이름은 최씨가 정한 것이었고, 이사진도 최씨가 직접 면접을 본 뒤 뽑은 사람들이었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는 지시도 했다. 실제로 미르·K스포츠 재단, 최씨의 신사동 자택, 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는 모두 전방 2㎞ 이내에 위치한다.
최씨는 2014년 10월 딸 정유라씨 초등학교 동창의 부모 이모씨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KD코퍼레이션의 사업소개서를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안 전 수석은 한 달여 뒤 박 대통령으로부터 “현대차에서 그(KD코퍼레이션)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안 전 수석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임원에게 이를 전달했고, KD코퍼레이션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원동기용 흡착제 11억여원 어치를 현대차에 납품했다. 최씨는 이 대가로 이씨부터 1162만원짜리 샤넬백과 현금 4000만원가량을 받았다. 또 최씨는 올해 5월 박 대통령이 프랑스 순방을 갈 때 경제사절단에 이씨를 넣어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차은택씨와 설립한 회사 모스코스·플레이그라운드가 대기업 광고를 잘 수주하기 위해 차씨의 측근 이동수씨와 자신의 측근인 김모씨의 부인 신모씨를 대기업 광고업무 책임자로 채용시킬 계획을 세웠다.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안 전 수석이 황창규 KT 회장에게 전달했고, 이씨와 신씨는 KT에 채용됐다. 그러나 당초 최씨 의도와 달리 광고가 아닌 다른 부서에 배치되자 다시 요청해 부서까지 광고 담당으로 바꿨다.
최씨는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이 박 대통령과 지난 2월22일 독대를 하며 여자 배드민턴팀 창단을 제의받았는데도 이후 추진을 거절하자 안 전 수석에게 이를 강하게 지적해 성사시킨 일도 있었다. 최씨는 K스포츠재단 정모 사무총장을 통해 안 전 수석에게 “(포스코가) 여자 배트민턴팀 창단 요구를 고압적이고 비웃는 듯한 자세로 거절하고 더블루K 직원들을 잡상인 취급했다”고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안 전 수석이 포스코에 재요청을 해 스포츠단이 창단됐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증거를 인멸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최씨는 지난달 25일 독일에서 측근들에게 “더블루K에서 가져온 컴퓨터 5대를 모두 폐기하라”고 전화로 지시했다. 측근들은 지시를 받은 뒤 컴퓨터 5대를 사무실에서 빼내 하드디스크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카드를 모두 포맷하고 망치로 내려쳐 부쉈다. 안 전 수석도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고 휴대전화를 폐기하라고 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