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가수 양희은이 깜짝 등장했다. ‘아침 이슬’을 부르며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연달아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힘차게 불렀고 시민들 역시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면서 광장은 열광과 감동으로 하나가 됐다.
그가 이날 불렀던 곡은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곡이다. 그 노래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자리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됐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고 긴급조치를 선포했던 1970년대는 우리 사회의 암흑기였다.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칼날을 휘둘렀고 수없이 많은 노래가 금지곡이 됐으며 문화예술인들이 갖은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었다.
당시 어떤 곡들이 금지곡이 됐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6일 광장에서 퍼졌던 ‘아침 이슬’과 ‘상록수’는 김민기가 만든 곡이다. 그는 1970년대 청년문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의 노래는 젊은 층의 마음을 급속히 파고들며 정서를 사로잡았다. 대학생들의 집회 현장에서도 그의 노래는 빠지지 않고 불리웠다. 이 때문에 전혀 선동적이지 않은 그의 노래는 젊은층의 의식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예컨대 ‘아침 이슬’에 등장하는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부분이 대한민국의 적화를 암시한다는 식이었다. 이외에도 ‘꽃 피우는 아이’ ‘주여 이제는 여기에’ ‘작은 연못’ 등 그의 다른 곡들도 대부분 금지곡 리스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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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어이없고 헛웃음이 나오지만 대다수가 이런 식이었다. 한대수가 만든 ‘행복의 나라로’는 노래에서 말하는 ‘행복의 나라’가 북한이 아니냐는 이유에서 금지곡이 됐다.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라는 부분을 두고 “지금은 행복하지 않냐, 행복한 나라는 북한이냐”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그의 또 다른 곡 ‘물 좀 주소’ 역시 물고문이 연상된다는 이유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이장희의 ‘불꺼진 창’은 쓸데없는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내용이 불륜해서, 신중현의 ‘미인’은 내용이 퇴폐적이어서,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을 하며 반항적인 정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왜 불러’에 나오는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라는 가사를 두고서는 경찰에 저항하고 공권력에 조롱한다는 설명까지 따라 붙었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 퇴폐풍조일소라는 명목하에 장발에 대해서 규제했고 이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거셌다. 배호가 불렀던 ‘0시의 이별’에 대해서도 불건전하고 퇴폐적이라고 했다. 당시 통행금지가 밤 12시였으므로 남녀가 0시에 헤어지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조승우, 신민아, 이성민 등이 출연했던 영화 <고고70>(2008년 개봉)에는 그 시절의 이같은 분위기가 묘사돼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 지정은 뚜렷한 기준도, 원칙도 없이 자가당착적이었다. 대표적인 곡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다. 이 곡이 발표된 지 1년만에 금지곡이 됐던 이유는 왜색이 짙다는 것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한일국교정상화 조치에 대한 반일감정 무마용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유가 뭐가 됐든 정작 이 노래를 금지시켰던 박대통령은 이미자를 청와대 행사에 단골로 초청할만큼 이 노래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