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부결된 이탈리아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광범위한 대중의 분노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투표 참가자 10명 중 6명은 마테오 렌치 총리(41)의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투표율 68.4%도 예상 밖으로 높은 수치였다. 의원 수를 줄여 비효율적인 의회제도를 개선하자는 개헌안을 왜 시민들은 폐기처분해 버린 것일까. 기성 정치권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에 대한 반감, 경제난과 실업 탓에 쌓이고 쌓인 분노, 긴축재정을 강요해온 유럽연합(EU)에 대한 반발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득권 제도에 대한 반란’으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의원들이 유독 많다. 상원은 315명, 하원은 630명으로 총 945명에 이른다. 현재 양원에 진출해 있는 정당이 8~9개씩인데, 정당들 이합집산이 많아 총선 전후에는 늘 정치가 요동친다. 2008년에도, 2013년에도 총리 사임 뒤 연정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새 총리를 못 세우는 정부 공백상태가 생겼다. 1946년 공화정이 들어선 뒤 70년간 정부는 63차례나 바뀌었다. 집권 2년9개월 된 렌치가 ‘장수 총리’라 불릴 정도다.
렌치가 취임 초부터 내세운 개헌안은 상원 선거를 없애고 상원의원을 지역 대표 중심의 100명으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입법권을 하원에 집중시켜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제도정치권 정당들의 합의를 거쳐 수차례 다듬은 개헌안이었다. 국민투표에 앞서 선거법도 고쳤다. 다수당 의석에 가중치를 둬, 1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쉽게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거부했다. 지난 10년여간 정치판은 로마노 프로디의 좌파 정부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정부를 넘나들었으나 어느 한쪽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다. 2013년 행정공백 때에는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당시 대통령이 총리조차 뽑지 못하는 정치권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렌치가 내놓은 개헌안을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권의 셀프개혁으로 봤다. 현지 일간 라스탐파는 “헌법 개혁, 총리, 그리고 정부 제도 자체를 거부한 유권자들의 반란”이라고 분석했다.
렌치는 집권 뒤 경제개혁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적 긴축이 주를 이뤘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럽중앙은행(ECB) 등 채권기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부 지출을 줄이고, 공공부문을 효율화한다며 해고를 ‘유연화’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는 은행과 기업들에 돈을 퍼부었지만 국민들은 고통을 떠안았다. 실업률은 여전히 12% 안팎이고,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지난해에만 청년 10만7000명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그들의 분노는 컸다. 18~34세 유권자 68%가 이번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경제사정이 심각한 사르데냐, 시칠리아 등 남부 주민 대다수도 개헌안에 반대했다.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은행들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분노한 국민들은 “이 상황에서도 정치 엘리트들은 국민이 아니라 은행가들을 걱정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런데도 렌치는 기성 정당들과의 합의를 ‘국민적 합의’로 착각했다.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의 표현을 빌리면 “국민들이 겪는 고초는 과소평가하고, ‘국민적 합의’는 과대평가한 것”이었다.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은 국민들의 반감에 기름을 부었다.
렌치는 판단착오 속에 정치개혁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개헌안 국민투표’로 치환해버렸고, 거기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의회제도가 지금은 비효율적으로 보일지언정, 그 자체는 역사적 산물이다. 무솔리니 파시즘을 경험한 이탈리아는 권력 분산을 중시한 헌법을 만들었다. 렌치는 그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개혁안을 던졌다가 “개인 권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유로존에 대한 반감도 컸다. 이탈리아 평균 가구 소득은 아직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유로화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지난해 조사에서 이탈리아인 41%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유로존을 지지하는 렌치의 민주당은 국민투표 캠페인 내내 반EU, 반유로를 내세운 오성운동과 극우파 북부동맹에 결국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