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사건’ 답변서…아전인수식 변명
미르·K스포츠 강제 모금은 구체 해명없이 무조건 부인
“공소장은 검사의 의견…언론도 폭로성 의혹 제기” 폄훼
전 정부 때 친인척 비리 열거 “형평성 반한다” 황당 주장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대통령 탄핵 사건’ 답변서에서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모두 ‘의혹’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기밀문건 유출이나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등에 대해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구체적인 ‘해명’은 내놓지 못했다. 되레 답변서에는 검찰 수사 결과와 언론 보도를 폄훼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안에 첨부된 최순실씨(60)의 공소장을 가리켜 “검사의 의견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대해서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무분별하게 남발된 폭로성 의혹 제기”라고 단정지었다.
■ ‘최순실 특혜’ 법적 책임 전무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20)의 초등학교 동창 부모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힘을 썼다는 의혹에 대해 “중소기업 애로사항 청취”라고 미화했다. 최씨가 납품을 알선한 대가로 샤넬백까지 챙겼는데도 박 대통령이 ‘뒷거래’를 몰랐다는 이유를 들어 청탁을 주선한 행위를 합리화한 것이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은 대기업 일가에 일감을 몰아주는 ‘재벌 카르텔’로 우수 중소기업들이 꽃 피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면서 “시야가 제한된 공무원 보고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것은 동서고금 널리 인정돼왔다”고 밝혔다. 최씨의 부탁을 받아 포스코와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실업 체육팀 창단을 요구한 것은 “문화·체육 융성이라는 정책적 관점에서 한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고 항변했다.
청와대 문건이 최씨에게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전달된 게 아니어서 구체적 유출 경로를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이 최씨에게 유출한 문건이 총 180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47건이 ‘공무상 비밀’이라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 측은 연설문을 최씨가 먼저 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통상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 눈높이에서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 주변 자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청와대 수석이나 정부부처 장관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박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최씨와의 관계 자체가 국정농단의 ‘요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민간인 신분인 최씨에게 ‘드레스덴 선언’ 등과 같은 외교상 비밀까지 비공식 루트를 통해 미리 전달된 사실이 드러난 상태다.
박 대통령 측은 최씨의 측근 차은택씨(47)의 추천을 받아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9) 등을 임명한 데 대해서는 “최순실을 잘못 믿었다는 결과적 책임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일 뿐 법적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KT 광고 일감을 최씨가 실소유한 ‘플레이그라운드’에 몰아주기 위해 특정 임원을 ‘낙하산’으로 임명하도록 유도한 부분도 “도덕적 비난은 별론으로 하고 직접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을 시켜 민간기업에 인사 압력을 수차례 넣은 정황이 나왔는데도 오리발을 내민 것이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관련해 대기업을 상대로 한 모금의 강제성도 부인했다. 한류 전파와 문화융성 등 정책 목표를 갖고 민관이 함께 추진한 공익사업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다. 그러나 해당 대기업 임원들은 검찰 조사에서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출연금을 냈다”고 진술했다.
■ 노무현·이명박 정부 ‘물귀신’
전직 대통령들의 친·인척 비리를 열거하면서 국회의 탄핵 추진이 “형평에 반한다”는 궤변도 늘어놨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친형 노건평씨(74)가 ‘봉하대군’이라고 불리면서 남상국 당시 대우건설 사장에게 연임 청탁을 받았다가 이 사실이 공개되자 남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를 제시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만사형통’이라고 불리면서 여러 경로로 민원을 전달한 이상득씨(81)의 사례도 덧붙였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만 ‘비선 실세’를 뒀던 게 아니라 정권마다 ‘공적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 민원을 청취했다가 부정이 발각된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두 정부에서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들의 공소장에 대통령이 ‘공범’으로 기재되거나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는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의견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