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숙소사용료 분쟁 이주노동자, 추방 위기

김원진 기자

스무살 여성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횡포와 고용노동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대처로 외국인보호소에 억류돼 한국에 입국한지 8개월만에 본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억류된 이주노동자를 돕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노동부 산하 대전지방노동청, 대전고용복지센터 등 국가 기관이 이주노동자의 억류에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부 관계자들은 “법과 제도가 규정한 대로 처리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비닐하우스 ‘숙소사용료’가 갈등의 발단

캄보디아 출신의 스룬 리호우씨(20)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고용허가제 시험에 합격해 3년간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취업비자(E9)를 받아 지난 4월6일 한국에 입국했다. 이후 리호우씨는 충남 논산의 야채재배 사업장에서 다른 이주노동자 6명과 일하게 됐다. 리호우씨는 고용주와 매월 226시간(하루 8시간·28.3일)씩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기로 규정한 표준근로계약서도 작성했다.

리호우씨는 근로계약서 작성 이후 며칠 뒤 또 한 차례 계약서를 쓰게 된다. 리호우씨를 돕는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와 노동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리호우씨가 두 번째로 쓴 계약서에는 임금에서 숙소사용료 월 35만원을 사전 공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소장은 “계약서는 캄보디아로 쓰여 있었지만 리호우씨는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모른 채 얼렁뚱땅 사인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리호우씨가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 외부 모습. 리호우씨 제공

리호우씨가 머물던 비닐하우스 숙소 외부 모습. 리호우씨 제공

실제로 리호우씨는 다른 이주노동자 6명과 함께 고용주가 숙소로 제공한 비닐하우스 안 컨네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비닐하우스는 여름에는 덥고 모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비닐하우스가 도랑 바로 옆에 놓여 있어 위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리호우씨가 매달 자신의 월급 통장에 100만원 미만의 돈이 들어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시점은 지난 7월초다. 리호우씨는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아가 상담을 했고 그제서야 숙소사용료 35만원이 매달 월급에서 사전 공제되고 있는 사실을 파악했다. 리호우씨가 시민단체를 찾아가 상담받은 사실을 알게 된 고용주는 리호우씨에게 지난 7월26일 또 다른 계약서를 내밀며 “앞으로는 숙소사용료 50만원을 내라, 무슨 말이지 아느냐”고 엄포를 놓았다.

고지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비닐하우스에 지내며 일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농촌에서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반강제로 근로계약서 이외의 계약서를 작성하게 해 숙소사용료를 받는 고용주도 많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또 “근로기준법 제21조, 43조에는 임금을 전액 지급해야 하며 숙소사용료 등을 명목으로 사전 공제할 수 없게 규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리호우씨가 최초로 작성한 표준근로계약서와 두 번째로 작성한 숙소사용료에 지불에 관한 계약서에는 모순점도 발견된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 논산지청에 따르면 처음 작성한 표준근로계약서는 ‘숙소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지만 두 번째 작성한 계약서에는 ‘숙소사용료 35만원을 월급에서 공제한다’는 문구가 있다. 두 계약서에는 서로 상반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주노동자가 시민단체를 찾아갔다고 해서 숙소사용료를 월 35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려받겠다고 협박한 고용주가 나쁜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숙소 사용료에 관한 계약서에 리호우씨가 서명을 쓴 것도 사실이어서 법적으로 하자는 없다. 숙소 사용료를 월급에서 공제한다고 규정한 계약서는 캄보디아어로도 쓰여 있어 리호우씨도 내용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리호우씨를 돕고 있는 김이찬 소장의 견해는 노동부의 해석과 상반된다. 김 소장은 “리호우씨가 두 번째로 쓴 ‘숙소사용료’에 관한 계약서는 고용주-노동자 관계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집주인-세입자 관계에서 쓴 것”이라면서 “이는 사실상 근로 계약이 아닌 별도의 임대차 계약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또 “‘숙소사용료’에 관한 계약은 임대차 계약이기 때문에 월급에서 숙소사용료를 사전 공제한 리호우씨의 고용주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리호우씨가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넣은 진정서 내용 중 일부.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리호우씨가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넣은 진정서 내용 중 일부.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임금체불과 협박 VS 무단이탈

리호우씨는 고용주와 갈등 끝에 지난 8월4일 숙소를 나온 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최저임금법 위반, 임금 체불, 불법 숙소임대차계약 강요 등 세 가지 내용을 담아 진정을 넣었다. 동시에 대전고용복지센터에는 고용주가 불합리한 이유로 퇴거명령을 내렸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고용주도 리호우씨가 사업장을 무단 이탈했다며 대전고용복지센터에 ‘사업장 이탈 신고’를 넣었다. 고용복지센터에서 사업장 이탈 신고를 받아들이면 이주노동자의 체류비자는 자동으로 정지된다. 리호우씨는 고용주를 상대로 진정을 넣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용복지센터는 사업장 이탈 신고처리를 일단 보류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2개월여간의 조사 끝에 지난 10월11일 리호우씨 측에 ‘임금 체불은 일부 인정되나 임금 체불액이 사업장 변경 요건은 갖추진 못했다’는 취지의 통보를 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리호우씨 측이 고용주가 누락했다고 주장한 임금 280만8000원 중 29만4000원만을 임금체불로 인정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리호우씨 측에 보낸 진정 결과 통보 공문.  리호우씨 제공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리호우씨 측에 보낸 진정 결과 통보 공문. 리호우씨 제공

노동부 고시인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에는 전체 임금의 30% 이상을 받지 못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리호우씨가 인정받은 임금체불액 29만4000원은 전체 임금의 30%에 한참 못 미친다. 노동부 관계자는 “리호우씨는 고용주가 제출한 근무일지에 자필로 서명을 했다”며 “근무일지상 받을 수 있는 임금과 리호우씨가 주장하는 임금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인이 근무일지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임금 체불액을 주장한 만큼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이찬 소장은 임금체불은 차치하고라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진정 내용 중 하나인 ‘불법 숙소임대차계약 강요’을 살펴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에는 ‘부당한 처우’(폭행, 상습적 폭언, 성희롱, 성폭행, 불합리한 차별 등)도 규정돼 있는데 이 부분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김 소장은 “리호우씨가 제공한 녹취록을 보면 고용주는 리호우씨에게 육두문자를 쓰거나 시민단체를 찾아갔다며 숙소사용료를 올리겠다고 협박도 했다”며 “누가 들어도 ‘부당한 처우’에 해당하는데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서는 이 부분을 왜 고려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노동부 관계자들은 “법과 제도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갈등 속 리호우씨 추방 위기

더 큰 문제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리호우씨의 ‘사업장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에 일어났다. 대전고용복지센터는 진정 기간 중 보류했던 리호우씨의 고용주가 신청한 ‘사업장 이탈 신고’를 받아들였고,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달 22일자로 리호우씨의 체류기간을 정지시켰다. 리호우씨는 하루 아침에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것이다.

고지운 변호사는 리호우씨가 취업비자를 잃게 된 과정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리호우씨는 내년 1월11일까지 노동청에 고용주의 임금 체불, 숙소임대차계약 강요 등에 대해 재진정을 넣을 기회를 갖고 있었다. 고 변호사는 “법원으로 따지면 진정은 1심, 재진정은 2심의 개념”이라며 “재판이 최종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하듯이 같은 이치로 재진정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취업비자도 취소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부 진정은 재판과 다르게 1심, 2심의 개념이 아니다”며 “노동부와 이주노동자간 분쟁이 일어나면 임시비자(G1)를 신청해 기존 취업비자가 취소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리호우 측은 구직비자 신청을 하지 않아 비자가 취소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이찬 소장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측에 자신들이 사업장 변경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주장했다.

리호우씨는 지난 4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계약되지 않는 숙소사용료의 임의 삭감은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줄 것’을 촉구하는 재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리호우씨는 지난 14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가서 조사를 받는 도중 경찰의 신분 조사를 받게 된 뒤 불법 체류 신분이 드러나 청주외국인보호소에 억류된 상태다.

리호우씨는 이르면 올해 안에 추방될 가능성도 있다. 고지운 변호사는 “노동부는 억울하면 행정심판을 신청해 자기네들 판단이 틀렸다는 결과를 갖고 오라는 말만 반복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노동부가 (일처리를) 잘 하지 못해 리호우씨가 억류된 것이라는 변명만 하고 있다”며 “사회에서 보호해줘야할 이주 노동자가 고용주의 횡포와 담당 행정부처의 안일한 일처리로 억울하게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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