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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추억, 손님들과 함께 지켜갈 것” 대학로 학림다방 30년째 운영하는 4대 사장 이충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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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추억, 손님들과 함께 지켜갈 것” 대학로 학림다방 30년째 운영하는 4대 사장 이충렬씨

1956년 개업, 격동의 세월 지켜온 서울대 문리대생의 ‘아지트’

애송이 단골들이 저명인사로…관광객 몰리지만 반갑지 않아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의 대표 이충렬씨가 이청준 작가, 김지하 시인,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그간 학림다방을 찾았던 각계 인사 800여명이 남긴 글귀를 담은 방명록을 펼쳐 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의 대표 이충렬씨가 이청준 작가, 김지하 시인,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그간 학림다방을 찾았던 각계 인사 800여명이 남긴 글귀를 담은 방명록을 펼쳐 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학림다방’은 서울 대학로의 산증거다. 6·25전쟁 직후인 1956년 문을 열었으니 환갑이 넘었다.

서울대 문리대의 축제인 ‘학림제(學林祭)’도 학림다방에서 이름을 차용했다. 당시 인근에 있었던 서울대 문리대·법과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까지 학림다방은 문리대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진보 지식인과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세력, 문화예술인도 모여들었다. 김지하·천상병·이청준·김승옥·김민기·황석영씨 등이 단골이었다. 1961년 1월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문인 전혜린은 사망 전날에도 이곳을 찾았다.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공안조작 사례인 1981년 ‘학림사건’의 발원지로도 유명하다.

이충렬씨(61)는 학림다방의 4번째 주인이다. 1987년 인수해 30년째 운영해왔다. 긴 세월 동안 대학로의 관찰자로, 학림 단골들의 벗으로 이곳을 지켜온 이씨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그는 “본래 모습을 잃고 망가진 학림다방을 원형 상태로 되돌리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수할 당시 학림다방은 옛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들이 서빙을 하고 음악도 유선방송에 연결해서 요상한 걸 틀어주고 있더라고요. 마음이 상한 단골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학림다방은 당시 심각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어요. ‘해보자’고 마음먹고 보증금 500만원을 맡기고 인수했죠. 우선 음악부터 클래식으로 바꿨어요. 손님이 찾는 음악을 바로 공수하기 위해 옆 건물에 있던 ‘바로크 레코드’도 학림다방 아래층으로 이전하게 했습니다. 학림다방의 강점은 장소성이고, 향수니까요.”

턴테이블에 얹힌 LP 디스크에서 베토벤, 바그너가 다시 울려퍼지자 단골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6·10항쟁으로 대표되는 1987년은 민주화운동이 불붙던 시기다. 대학로는 연일 시위대와 전투경찰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였다.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했다.

이씨는 “전경에게 쫓긴 학생들이 학림으로 우당탕 뛰어올라오면 셔터문부터 내리고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어낼 물을 제공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0~1990년대는 그래도 낭만과 객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학림엔 김민기·이상우·김광림 등 대학로의 내로라하는 공연 연출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단골 뒤풀이 공간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풋내기였던 송강호·설경구·황정민씨 등 배우들과 전인권·고 김광석씨 등 가수들과도 이씨는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사진작가인 이씨 자신이 공연 스태프 일원으로 활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씨는 연우무대 등 대학로 극단들의 요청을 받고 라이카M6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직접 보도자료용 공연사진을 찍고 포스터도 제작했다.

“당시엔 옥상에 테이블을 놓고 지붕을 씌운 3층 공간이 있었어요. 음악감상실도 열고 뒤풀이도 했죠. 어린 줄만 알았던 배우들이 지금은 톱스타가 됐어요. 전인권씨는 옛날에도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보면 아주 순박했죠. 100회 공연으로 학전소극장을 거의 먹여살린 광석이는 굉장히 말도 잘하고 밝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갔으니….”

그는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하기 전부터 원두커피를 갈아만든 ‘핸드드립커피’를 학림다방에서 선보였다. 그 맛이 특별해 저술가이자 번역가인 이덕희씨는 지난해 6월 고인이 되기까지 매일 학림의 커피를 마셨다. 거동이 불편했을 땐 이씨가 집으로 배달해줬다.

또 백기완 선생은 지금도 이따금 학림다방에 나와 같은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1987년 당시 일본기업 산요의 임원이었던 일본분이 학림의 음악과 분위기가 좋다며 단골로 오셨어요. 어느날 그분이 ‘커피맛까지 좋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으로 저를 부른 다음 직접 로스터로 원두를 볶고 갈아서 내려줬어요. 향이 좋더라고요. 이후 그분과 일본에 가서 로스터도 사고, 커피 만드는 법도 배웠어요. 나중에 대학로에 입점한 스타벅스 2호점 점장도 학림의 커피맛을 보곤 감탄하더라고요.”

요즘 학림다방은 젊은층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오후 시간엔 줄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다. 한류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는 밀려드는 관광객이 썩 반갑진 않다. 관광버스로 20~30명씩 한꺼번에 들이닥쳐 사진을 찍는 등 소란을 떨어서 이씨가 한국관광공사에 항의한 적도 있다.

그는 “손님이 느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오랜만에 이곳을 찾아 젊은 시절을 추억하고 싶은 분들이 피해를 입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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