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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에서의 하루

입력 2017.01.08 21:04

수정 2017.01.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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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연재를 시작하는 코너의 이름이 ‘산책자’로 정해졌을 때 이곳저곳 어슬렁거린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밖에서 살랑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호사를 누리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미세먼지의 습격은 밖으로 나설 용기를 꺾어 버린다. 하나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을 터인데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하늘을 덮어 빛을 가리고 풍경을 찌그러뜨린다. 이런 때는 지붕 밑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다. 피난처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그곳에 들러 공룡에게 인사하고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따라서 혹은 거슬러 산책을 하는 것은 늘 즐겁다.

[산책자]자연사박물관에서의 하루

나라 안이든 바깥이든 여행지에 자연사박물관이 있으면 꼭 찾아가 보려고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설립된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1969년에 문을 열었으니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설립한 종합자연사박물관은 2003년에 문을 연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이 처음이니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고성공룡박물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장생포고래박물관’과 같이 특징 있는 박물관들이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투자도 모자라고 인력도 부족해서 아쉬운 점이 많다.

내 생애 첫 자연사박물관은 뉴욕에 있다. ‘미국자연사박물관’. 여행 중에 무심코 들른 이곳에서 내 자연사박물관 사랑이 시작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생산물들을 직접 만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는 300만점이 넘는 표본이 있고 그중 0.02%만 46개의 전시실에서 전시된다.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것은 표본의 숫자가 아닐까?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1억점,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는 5000만점,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는 3000만점의 표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표본이 가장 많은 ‘국립생물자원관’에는 세계적인 박물관의 1% 정도에 해당하는 표본들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인상적인 전시물들은 복제품이 많다. 여행안내책자들이 한결같이 먼지만 쌓여 있고 인적이 드물다고 소개하는 ‘상하이 자연박물관’에도 거대한 마멘키사우루스 화석을 필두로 인류 조상들의 뼈, 희귀 동물들의 박제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자연사박물관 산책에서 놀라운 물건들을 발견할 확률이 낮은데도 여전히 즐거운 이유는 그래도 조각에서 전체를 상상하면서 얻는 재미가 짜릿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네 번째 시즌을 시작한 영국 드라마 <셜록> 팬들이 머리털 한 가닥, 타액 한 방울과 같은 희미한 조각에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룡의 뼈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1973년 경북 의성군에서 공룡뼈 화석이 처음 발견된 이후 곳곳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모두 원형의 15%에 못 미쳤다. 30% 정도가 최고. 하지만 공룡 발자국 화석은 1만여개를 훌쩍 넘는다.

직경이 80~90㎝에 이르는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에서 공룡의 가랑이가 어디쯤인지 가늠해보면 아득하다. 너비 24㎝, 길이 32㎝의 작은 발자국들에 맞추어 공룡의 걸음걸이를 따라해 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첫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이 서로 평행을 이루지 않고 25도 정도 기운 발자국은 그 주인이 오리걸음처럼 뒤뚱뒤뚱 걸었다는 증거이다. 큰 발자국 옆에 모양은 같지만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엄마 따라 산책 나온 아기 공룡을 만난 것이다. 어지럽게 찍힌 초식 공룡 몇 마리의 발자국과 그것을 따라가는 육식 공룡 발자국을 통해서 초식 공룡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과 육식 공룡의 사냥 습관을 엿볼 수 있다. 평면에 찍힌 발자국에서 풍성한 볼륨의 공룡들이 걸어 나온다.

물론, 이런 상상이 근거 없는 몽상은 절대 아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광물전시관에 있는 보잘것없는 돌마다 논문이 몇 편씩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수백명의 연구 인력들이 박물관의 표본들을 연구하고 있고 그 결과는 끊임없이 논문으로 보고되고 있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은 40억년 전, 생명의 탄생 때부터 지금의 생물들을 노아의 방주처럼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엔 기후변화를 반영한 기상 상태를 실내에서 재현한다. 인간이 초래한 변화 때문에 수십억년을 이어 온 생명들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하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 사이를 산책하면서 시작한 상상이 걱정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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