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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토벌 의혹’ 백선엽의 명예원수 추대…동료들이 막았다

  •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박경석 장군 “MB 때 추진…6·25 참전 원로들 반대로 무산”

백, 일본 작가에 “동포에 총 겨눠”…친일파, 5성 장군 될 뻔

‘독립군 토벌 의혹’ 백선엽의 명예원수 추대…동료들이 막았다

간도 토벌대 출신으로 ‘6·25 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97·사진)을 이명박 정부 때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는 방안이 추진됐다가 6·25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군 원로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사실이 5일 확인됐다.

1981년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차장(준장)으로 심일 소령 태극무공훈장의 부당성을 확인했던 박경석 예비역 장군은 육군 군사연구소에 보낸 진술서에서 백선엽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이 가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심일 소령을 기념하는 심일상 제정에 찬성할 것을 종용했던 사실을 밝히면서 백 장군이 명예원수가 되지 못했던 과정도 함께 기술했다.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움직임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군 출신 등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등장했다. 박 장군은 “백 장군이 명예원수로 추대된다는 내용을 접한 후,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건군이념에 배치된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직함으로 2009년 3월7일과 2010년 4월19일 1, 2차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박 장군은 “하마터면 친일파를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로 임명할 뻔했다”면서 백 장군이 1960년대에 일본인 작가와 대담한 기록을 전했다. 이 기록은 1993년 일본에서 출간한 <대게릴라전-아메리카는 왜 졌는가>(원서방, 29쪽)에서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란 부분에서 언급됐다.

박 장군은 “백선엽 자신은 (명예원수 추대)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보낸 공문에서 ‘본인은 간도 특설대에 근무한 사실은 있으나 독립군 토벌작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비추어 볼 때 명백한 허위임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김 전 장관은 국방부 인사복지실을 통해 사실 확인에 들어갔고, 채명신 예비역 장군 등도 위의 내용이 진실임을 확인해줬다는 게 박 장군의 설명이다. 그는 “만일 건국 최초의 명예원수가 백 장군이 되었다면, 세계 군사학계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공산군의 남침 전략을 합리화시키는 중대한 우를 범할 뻔한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군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에 창군 원로들을 비롯한 군 원로들이 수십통의 자필 편지로 백 장군 명예원수 추대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국방부 조사보고 등을 종합해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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